고쳐도 좋고, 못 고쳐도 괜찮은 마음
예전에 아들의 악필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남편의 악필에 대해 쓰려고 한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인지, 자전부전인지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남편 역시 아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악필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주말, 남편과 교보문고를 찾았다가 충동적으로 책 한 권을 샀다. 전부터 자신의 손글씨를 부끄러워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글씨 쓰기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 학급 서기를 도맡아 했던 나는 그의 고민에 쉽사리 공감하지 못했다. 글씨체도 나이답게 중후하고 성정처럼 차분하고 조용하면 좋으련만, 남편의 글씨는 볼 때마다 웃기고 안타깝다. 큰 키에 큰 대(大) 자를 쓰는 이름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오밀조밀 쪼잔한 글자 크기, 애매하게 긋다만 듯한 획들, 냉철하고 이성적인 성향처럼 곧은 모양새이긴 하나 어딘가 균형이 무너진 듯한 삐뚤빼뚤함.
서점에 들른 김에 이참에 손글씨 교정을 해보자며 남편을 부추겼다. 요즘 필사 책도 많으니 따라 쓰다 보면 자연스레 고쳐질지 모른다고 으쌰으쌰. 수십 년을 써온 글씨를 단번에 바꾸기란 어렵겠지만, 어린이 글자교정 하듯 깍두기 칸 글자 쓰기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했다. 서점 검색대에서 '손글씨'라고 검색하니 의외로 다양한 책들이 나왔다. 예쁜 글씨, 바른 글씨, 보기 좋은 글씨. 반듯한 글씨, 또박또박 손글씨 등등. 그중 <나도 손글씨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는 마치 오래된 병자가 효험 있는 약방을 찾아온 것 같은 안도와 희망이 스며드는 듯했다.
서가에서 여러 책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며 고르다가 선택한 것은 <악필 고치는 손글씨 연습>. 사실 제목보다 부제가 더 매력적이었다. '심한 악필: 믿음직하고 단정한 글씨'. 남편은 자신이 심한 악필까진 아니라며 사기를 주저했지만, 예쁜 글씨는 나중 문제고 일단 제대로 쓰는 게 먼저라며 남편을 설득했다.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 메모장을 활용하거나 컴퓨터 워드파일을 이용하니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쓸 일이 많지 않지만 반드시 손을 거쳐 글씨를 써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조의금이나 축의금 봉투에 이름 석자를 쓰는 순간들. 이럴 때면 남편은 항상 내 손을 빌려 자신의 이름을 쓰곤 했다. 특히 조의금 봉투에 이름을 쓸 때면 안타깝고 엄숙한 마음과 달리 자신의 글씨는 그에 어울리는 모양새가 아니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회사에서도 공유 문서에 직접 이름을 써야 할 때면 약간의 부끄러움이 따른다고 고백했다. 악필자의 애환은 웃프고 짠했다.
호기롭게 책을 사고 집에 와서 몇 자루 없는 연필 중 또렷하게 잘 써지는 2B연필을 골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번 기회에 남편이 특유의 성실과 꾸준함을 바탕으로 글자 교정에 성공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늘 글자 모양을 지적하며 놀리는 나였지만, 막상 그가 악필에서 탈출해 반듯한 글씨를 쓰게 된다면 서운할 것만 같다.
그의 글씨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무 해 전 나에게 처음 선물한 책의 맨 앞장에 적혀 있던 문장이 떠오른다.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성심성의껏 눌러쓰던 글자들. 삐뚤빼뚤 했지만 그만의 모양이 분명했던 글씨. 아마도 나는 그 글씨가 꽤 그리워질 것이다. 고쳐도 아쉽고, 못 고쳐도 아쉽고.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