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두 번째 날이었다. 과목은 수학과 국어. 자신 있지만 두려운, 그렇지만 가장 백점 맞고 싶어 하는 과목 수학이었다,
인강과 혼공으로 공부하면서도 줄곧 상위권인 아이에게 수학은 자존심과 같았다. 학원에서 혹독하게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은 혼자서도 잘하고 있다는 우월감과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그러면서도 전국 자사고를 목표로 쉬는 시간마다 수학의 정석을 거침없이 푸는 같은 반 아이를 볼 때면 기가 조금 꺾이는 것도 같았다. 늘 그 아이를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마음만 앞설 뿐 실제 노력의 양은 비례하지 못했다. 차마 도둑 심보 같다는 말은 못 하고 공부 양을 좀 더 늘려보면 어떨까, 넌지시 아이에게 말을 꺼내면 이 말은 곧잘 잔소리로 번역되기 일쑤였다.
이번에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좋은 점수를 기대한 건 사실이다. 예습부터 시험 대비까지 총 6권의 문제집을 풀었고, 하루도 수학 공부를 쉬지 않았으니까. 개념부터 응용, 심화까지, 기출문제와 오답풀이는 질리도록 했다. 그만큼 게임도 야무지게 챙겨서 했지만.
시험 당일, 아이 학교 근처에서 일이 끝나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렸다. 조금 전 전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몹시 찜찜한 기분으로. 시험 끝난 아이는 차에 올라타자마자무섭게 울기 시작했다. 187cm의 커다란 아이가.
어렸을 때는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눈물부터 삐져나오던 아들이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보는 눈물이었다. 사춘기의 복잡한 감정 터널을 지나면서도 크면서부터 쉽사리 눈물은 보이지 않는 아이였는데, 아무리 시험을 못 봤어도 정말 어려웠다고 투덜대며 솔직히 점수를 털어놓을 텐데 대놓고 울기부터 하니 당황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꺽꺽대며 우는 모습을 보니 속상한 마음에 내 안에서도 눈물이 배어 나왔다. 동시에 현실 엄마의 속마음도 꿈틀대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렸다.
- 아, 망했구나.
- 시간이 모자랐나, 실수를 했나, 어려워서 못 풀었나.
- 중간고사에서 1개 틀리고 수행에서 몇 점 깎였으니 90점은 넘어야 안정적인 A인데 그냥 B로 가겠네.
다행히 운전하는 데에 집중해야 해서 아이에게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할 말을 떠올렸다.
-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라.
-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고정값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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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숱하게 읽고 들어온 교육서와 전문가의 말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휘젓고 다녔지만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가장 속상한 건 아이일 테니 현실적인 분석과 팩폭은 나중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게 우선이니까.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하다 나온 첫 말은 이거였다.
- 많이 긴장했을 텐데 수고 많았어.
아이는 몇 분 울고 나니 그제야 스스로 입을 열었다.
- 한 문제는 검산하다 고쳤는데 시간이 없어서 한번 더 확인을 못했어. 이전 답이 맞았는데 괜히 고쳐서 틀렸더라고. 한 문제는 계산 실수해서틀렸고, 한 문제는 못 풀었어.
핑계인지 모를 이유들이지만 눈물을 삼켜가며 털어놓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맹세컨대 점수에 대한 속상함은 아니었다. 그깟 수학 점수가 뭐라고 내 새끼가 이렇게 울고 있는가였다. 혹 부모의 칭찬과 기대가오히려 부담이 되었나 되짚어도 봤다. 곧이어 다시 현실 머리로 돌아오니 나의 과한 희망회로, 점수에 대한 실망감이 움찔대고 있었다. 이런 내 속마음을 알아챘나 싶게 아이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엄마, 게임도 하고 놀면서 그만큼 공부하면서 00 이를 따라잡는다고 생각했던 게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어. 매일 학원에서 서너 시간씩 공부하고 숙제하고 훨씬 많이 노력한 애들을 내가 어떻게 이기겠어. 앞으로 공부시간을 더 늘려야겠어.
예전에 했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는 줄 알았는데, 고스란히 읊고 있는 아이의 말에 놀랐다. 그것이 금세 휘발되어 사라질 각오라 할지라도.
아이가 눈물을 그치고 나니 나도 속으로 되뇐 좋은 말들을 꺼냈다.
- 고등학교 가서 첫 시험을 보면 처음 보는 점수가 나와서 다 그렇게 운대. 오히려 지금 한번 경험한 게 나을 수 있어. 이래야 맷집도 생기고 너도 멘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시험은 이미 끝났으니 결과를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자. 그런데 틀린 문제랑 못 푼 문제는 꼭 확인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어.
집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삼겹살을 한가득 굽고 있는데 아들이 씩씩대며 수학 시험지를 들고 나온다. 못 푼 거 다 풀었다면서.
- 시간만 조금 더 있었어도 차분히 풀면 얼마든지 풀 수 있었는데 너무 아까워. 어려운 것도 아니었어.
아쉬웠다. 백점 맞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시험지를 꺼내 기어코 풀어낸 걸 보니 속 쓰린 기특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점심을 먹고 나선 뭐 하나 들여다보니 책상에 수학 시험지를 떡하니 붙이고 있었다.
눈물 젖은 수학 시험지였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면서.
공부 독립을 위해,
더 나아가 건강한 자아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실패할 때 좌절하지 않고 성찰하는 태도
-성장 마인드셋
-자기 자신을 다독이고 격려할 줄 아는 마음
<참고도서: 1등급 집공부 학습법, 유선화 지음>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백점보다 빛나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한 하루. 시행착오를 통해 또 한 번 다져진 공부 근육과 성숙한 마음과 태도에 엄마는 또 희망회로를 돌리고 싶다.
아차,
앞으로 잘할지 한번 두고 보겠다는 삐딱한 마음은 버리겠다.아직 모를 꿈을 향해 달려갈 너를 순수하게 응원하고 믿는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