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작부터 계약 종료라니
청천벽력이 전화위복이 되길 바라며.
희망 찬 새해인데 왜 이리 여러 날 동안 마음이 무거운지 생각해 봤다. 계획을 세우는데 의욕도 없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멍한 그런 상태도 지속됐다. 이런 모습은 새해의 마음가짐으로 영 적절치 않으니 어서 나를 새로이 다잡고 싶었다. 일단 글을 쓰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오랜만에 글쓰기 창을 열었다.
무기력한 마음 상태의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며칠 전 안타까운 여객기 사고로 마음이 내내 서글펐던 데다, 내란으로 나라가 온통 불안과 걱정에 덮여 있는 상황도 한몫할 것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달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강사 계약 종료가 확정되어서겠다. 초등학교 돌봄 교실 특기 수업 강사로 두 학교에 출강 중인데 3일이나 수업을 하는 한 학교의 재계약이 결렬된 것이다. 이유인 즉 늘봄 학교의 확대로 인한 예산 삭감, 한마디로 구조조정이다. 작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편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실망감은 꽤 컸다. 나머지 한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나에게 잘 어울리고 몸에 잘 맞는 예쁜 옷을 입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롭게 도전하고픈 분야였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잠깐의 오후 시간만 할애하면 되니 아이도 챙겨야 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좋은 자리였다. 물론 어느 정도 지나니 초반의 열정은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막무가내 안하무인 저학년들을 이끄는 것도 마냥 즐겁고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림책의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과 수업하며 보람과 성취도 컸고, 고사리손으로 끄적거리는 글씨와 그림들을 보면 귀엽기 그지없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림책과 어린이들의 순수를 경험하며, 시간이 갈수록 갈고닦아지는 내 모습에 뿌듯하면서 흐뭇하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벌써 2년 반이 흐른 거다.
비록 기존 계약은 종료되었으나, 미리 계약해 둔 다른 학교가 있어서 일은 계속하게 됐다. 하지만 수업 횟수가 확 줄면서 갑자기 텅 비어버린 오후의 시간들은 어찌 보낼 것이며, 커져버린 씀씀이는 어디서 메울지 부지런히 궁리해 본다. 잠시 쉬어가도 될 텐데 내 마음은 왜 이리 불편하고 불안한 걸까.
나도 모르게 초완벽의 육각형 인간(외모, 학연, 자산, 직업, 집안, 성격, 특기 등 모든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인간을 지칭)을 선망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육각형은 못되니 최소한 삼각형 인간으로라도 살고 싶었던 걸까. 사회적 인정, 넉넉한 생활비, 자아실현을 동시에 만족하는 그런 사람.
경력단절의 평범한 40대가 별 것 없는 경험과 스펙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은 칭찬받을 일인데, 왜 그것을 당당히 누리지 못하고 좌절과 후회에 잠겨 있는 걸까. 여전히 아등바등하며 온갖 걱정과 불안을 끌어안고 있는 것인가. 일단은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나를 잘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다음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즐겨온 외식과 배달음식을 줄이고, 가성비 있는 효율적인 집밥 식단을 계획해야 한다. 사고 싶은 것은 쓸모와 효용을 더 여러 번 거듭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구매한 침대 할부도 마음에 걸린다. 16년이나 사용해서 움푹 눌리고 삐그덕 대길래 과감히 이별을 고했는데 그때 망설이던 남편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차도 바꿔볼까 싶어 기웃기웃 댔는데 그것도 당분간 보류. 온 가족 유럽여행도 훠이훠이.
어쨌거나 앞으로 계속해서 채용공고를 들락날락하겠지만, 조바심과 강박보다는 차분히 나의 앞날을 고민하며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새로운 일을 벌일 엄두나 계획은 없는 수동형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안히 인정하고 싶다. 작은 일에도 기쁨과 만족을 찾고 싶다. 동시에 새롭게 뭔가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가슴 뛰는 설렘이 생기기를, 청천벽력 같은 계약 종료 통보가 모쪼록 전화위복이 되어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람 해본다.
어쩌다 보니 이 매거진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기 위해 무슨 아르바이트라도 해볼 것이냐, 나 자신을 가다듬고 성장할 수 있는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가질 것이냐. 하지만 낮은 자존감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는 좀 더 성장했고 분명 달라졌다고 믿는다. 노력한 만큼 준비한 만큼 나아지고 발전하는 것을 몸소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2025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걱정과 두려움대신 용기와 자신감을 장착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