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아빠의 손은 크고 거칠었다.
세월에 깎이고 단련된 그 손은,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고 안정감을 주는 손이었다.
두텁고 커다란 손바닥엔 굳은살이 빼곡히 박여 있었다.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던 그 손.
어릴 적, 나는 그 손을 보며 생각했다.
남자는 어른이 되면 누구나 그런 손을 가지게 되는 줄로.
그 손을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걸,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빠는 농사를 짓는다.
내가 알기로, 어려서부터 농사 말고는 해 본 일이 없으시다.
해와 함께 아침을 열고, 해와 함께 저녁을 닫는 삶.
인내와 땀으로 사계를 건너,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삶은
아빠와 꼭 닮아 있었다.
서두르지 않지만, 결코 느긋하지도 않던 그 손길.
농사짓는 모습은 아빠와 참 잘 어울렸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는 가끔 농사일을 도왔다.
그 지난하고 긴 호흡의 단편만 맛보았을 뿐이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를 꼬박 몸을 쓰고,
다음 날 새벽같이 멈춰진 몸을 일으켜야 하는 고통.
결실은 짧았고, 준비는 길었다.
어린 나에게 그 기다림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농사에는 젊은 체력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오래 묵은 무게 같은 게 있었다.
흙과 땀이 섞여 나는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고단함 끝의 위안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 냄새엔 아빠와 엄마의 삶이 배어 있었고,
지금은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이 되었다.
몸이 곧 재료인 농사일로
아빠는, 그리고 엄마는 몸이 많이 상하셨다.
다른 많은 농사꾼들과 마찬가지로,
몸 곳곳에 수술자국이 남았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농사를 놓지 않으셨던 건
결실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마침내 찾아오는 소박한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무거운 삶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거나.
지금 나는 내 손을 바라본다.
까맣게 그을리지도, 굳은살이 촘촘히 박이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의 손.
어릴 적 동경했던 아빠의 그 단단한 손을 닮기엔
내 삶의 밀도가 그만치 높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손에도
아빠의 손이 내게 전해준 무언가는 분명히 남아 있다.
흙 속에 파묻힌 채 사계절을 넘기고,
땀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바람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
여름이면 모내기로, 가을이면 수확으로,
겨울이면 또 새해를 준비하던 그 바쁜 손.
우리 가족의 생을 조용히 지켜낸, 등불 같은 손.
이제 나는
그 마음을 품은 손으로,
내 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조용히 바란다.
아이에게도 내가 받은 그 마음이 전해지길.
그 작고 고운 손이, 거칠어질 즈음에,
그리워할 무언가가
그 안에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