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나와 아빠, 그리고 여섯 대를 거슬러 올라간 조상까지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맑은 강의 발원지 가까이에 자리 잡은 그곳은,
겹겹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마을이었다.
걸어서는 공책 한 권도 구할 수 없고,
아침 버스를 놓치면, 학교 갈 길이 아득해지는
시골 중에 시골 마을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고,
이웃집 담벼락 너머의 과일들을 탐하는 아이에게
하나 더 손에 쥐어주는 정이 있는 곳이었다.
아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시는 어른들이
아빠를 쏙 빼닮은 아이를 보며
세월의 흐름에 한숨 지을 깊이가 있고,
천방지축 또래들과 무슨 짓을 해도
마을 안에서라면 어른의 품으로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밤이면 어둠이 너무 깊어,
어린 마음에 귀신은 무서웠지만,
한 번도 사람을 무서워해본 적이 없던
따뜻했던 마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곳은 물에 잠겼다.
〈물에 잠긴 내 고향〉이라 적힌 사진집 한 권만 남기고,
지금도 저릿한 그리움을 남기고 그곳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때도 아빠는 담담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들을 모두 떠나,
물에 떠밀리듯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했던 그는,
아니, 그때의 우리는,
고향을 잃은 슬픔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거다.
낯선 곳에서 부모님은
산을 밭으로 만들고,
새로운 땅에 새로운 작물로 농사를 짓느라,
몇 년을 고생하셨다.
그 마을의 진짜 일원이 되기까지,
수년을 속앓이 하셨다.
현실은 슬픔을 삭힐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던 거다.
몇 년 후, 부모님과 댐 기념관을 찾았다.
지도도, 이정표도 사라진 그 자리에,
우리는 기억만으로 고향의 자리를 짚어가며 걸었다.
그때 나는 이미 어릴 적 기억을 잃어가던 소년이었다.
한때 삶의 모든 것이 담겨있어,
잊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그곳을 회상하는 아빠의 표정은
둔감한 내 눈에도 그리움이었다.
아직 나는 고향을 잃은 그때의 아빠만큼 살지도 못했고,
그나마도 온갖 곳에서 떠돌아 살아왔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은은한 향기에 가까울 만큼 어렴풋하다.
그럼에도 다시는 닿을 수도, 숨 쉴 수 없다는 그 상실감에
가슴이 조용히, 오래도록 저려왔다.
고향을 잃고, 낯선 땅에 뿌리내리며,
더 깊고 아린 가슴을 안고 살았을 아빠를 추억한다.
가득 메운 물보다 먹먹했을 아픔을 되뇌어 본다.
지금도 가끔, 그곳의 물 내음이 코 끝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