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딸아이가 풍차돌기를 멋지게 해냈다.
두 팔을 번쩍 든 채 한 바퀴 돌고, 어설픈 착지로
“아빠, 봤지?” 하고 웃던 그 순간.
나는 아내에게서 배운
칭찬과 웃는 표정을 억지로 지어본다.
짓다만 내 미소에 아내는 눈을 흘기지만,
대견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아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나는 아이의 성장이
벽 한구석에 그어진
키재기 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의 키는 매일 크지 않더라.)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며,
말랑한 피부 위에 하나둘 굳은살이 생겨나고,
뽀얗던 새살에 햇살이 내려앉아
점점 더 세상의 일부가 되어가는
변화의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장의 모습엔 끝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다.
매워서 못 먹던 라면에 어느새 군침을 흘리고,
벌벌 떨며 겨우 빼주었던 이를,
밥 먹다가 빠졌다면 대수롭지 않게 자랑하거나.
아이의 부모로서,
그 변화들을 마주할 때면, 늘 벅차고 새롭다.
굳게 닫힌 표정과는 별개로,
딸아이로부터 얻는 감동과 행복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다.
아빠도 그랬을까.
나라는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감동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오 남매 중 넷째였던 나는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른스러운 척하던, 살가움이 서툰 아이.
내 생각에도,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제법 좋은 성적을 받은 날에도,
아빠에게 직접 따뜻한 칭찬이나
대견하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은 없다.
대학 입시나 회사 입사에 성공했을 때도
엄마를 통해 전해 듣는 말이 전부였다.
“아빠가 친구들한테 엄청 자랑하셨다더라.”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네 번째 느끼는 감동이라서,
아빠라는 존재의 마음이 그 정도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굳어진 근육으로 어색한 미소를 만들어 보이는 나,
그 마음을 들여다보며 아빠가 떠올랐다.
한없이 기쁘고 벅찬 마음을
지어낼 표정 하나 없이 숨기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 시절,
더욱더 철옹성 같던 남자의 세상으로부터
표정을 도둑맞은 아빠는,
그 큰 마음을 그렇게 감추고 살았던 건 아닐까.
평생 받아본 적 없는 그 마음을 건네기가
차마 쑥스러웠던 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세상을 향해 한 뼘 커버린
딸아이 앞에서
서툰 미소를 짓는다.
아빠의 웃음도 눈물도 부끄럽지 않은 시대.
지난날 잃어버린 그것들을 곱씹어본다.
아빠가 지었을 그 엷은 미소,
그를 닮은 얼굴로
딸의 세상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