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아빠와 나는 자주 보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다.
‘효자’일지언정, 예쁜 아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농사를 업으로 삼은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학업을 위해 도시로 떠났고, 부모님은 늘 시골에 계셨다.
무심한 남편이기 전에,
나는 더 무심한 아들이었다.
연락도 자주 드리지 못했고,
가끔 닿눈 연락도 대부분은 엄마에게였다.
그래서일까.
아빠와 나눈 대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길게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그날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였을 것이다.
며느리가 생긴 일이 마냥 기쁘셨던 아빠는,
그날따라 유난히 밝아 보이셨다.
식탁 건너편에 앉아 위스키를 따라주시던 모습.
진한 사투리가 묻어나던 그 말투.
그 밤, 아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결혼하면 무조건 아내가 일순위여.”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겠지만,
그보다 선명하게 남은 말은 없다.
아빠와 평생 나눈 그 어떤 대화보다도
가슴 깊이 각인된 말이었다.
무뚝뚝한 손등 같은 사람이던 아빠에게
그런 부드럽고 단단한 말이 숨어 있었을 줄은,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짧은 한마디는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진심 어린 그 조언이 진짜 내 것이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와의 갈등을 통해서였다.
결혼 후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아빠의 환갑 잔치를 앞두고 가족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다.
나는 그 중간에서 현명하게 줄타기를 했어야 했지만,
결국,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오히려 갈등은 깊어졌다.
그러는 사이,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졌고,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
마치 사건의 지평선을 지난 것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감정의 저편으로,
우리 가족은 이미 그 너머에 있었다.
엄마는 끝내, 마지막 시도를 하셨다.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첫 단추부터 다시 풀어보려는 자리.
그러나 감정의 골은 이미 아득했고,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마 처음으로,
아빠에게 화를 냈다.
남들 앞에 던져진 아내는
돌이 갓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머금은 손을 벌벌 떨었다.
그 손을 잡아줄 유일한 사람은,
적어도 그 자리엔 나뿐이었다.
그 아내의 손을 잡고,
나는 아빠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어쩌면 지워지지 않을 선을 그었다.
내 사람을,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나는
아빠가 새 신랑에게 건넸던 그 말을
행동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늘 가족들 앞에서 미숙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존재였다.
그들 앞에 서면 작아지고, 감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확신이 있었다.
그 선택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걸로 나는, 우리를 더 공고히 했고,
내 삶의 방향을 확인하고 보여줬다.
다만, 가끔은 생각한다.
그날 아빠가 내게 건넸던 그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실까.
그리고, 그 말을 지키려 애썼던 나를
조금은 장하다고
생각해주시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