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을 밀어내며
아빠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기뻐도, 슬퍼도, 화가 나도
아빠가 지어내는 표정은 늘 비슷했다.
어릴 적엔 그 모습이 어렵고 조금은 무서웠다.
왜 아무 말이 없을까.
왜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을까.
아빠와 나 사이엔 그로 인한 ‘거리감’이 있었다.
엄마는 달랐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감정은 자주 흘렀고,
아빠의 감정은 언제나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 아빠를 많이 닮았다.
아내는 종종 말한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인풋 넣으면 아웃풋 나오는 로봇 같다니까.”
억울하지 않다.
나도 가끔 그렇게 느끼니까.
하루를 살아도, 감정을 섞을 만한 것들이 없다.
쳇바퀴 같은 직장생활,
그리고 점점 더 쌓여가는 책임감과 기대감.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다.
어릴 적 나는 그렇게 무딘 사람만은 아니었다.
문학 동아리에서 시를 쓰고, 다른 이의 시를 읽으며,
혼자 감상에 잠기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감성적인 아이였다.
그때는
꺼질 듯한 차가움도,
터질 듯한 뜨거움도,
품을 만한 ‘여백’이 있는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정확함과 효율만을 쫓아사는 삶은
그 감성이란 놈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직장인으로 10년.
마음을 드러내고, 감정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내 가슴에 상처가 되어
여기저기 흉이 지기도 했다.
그 흉터들은 굳은살이 되어,
딱딱하게 나를 감쌌다.
감정을 잊고 산다는 것.
나름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감정에 휘둘려 일을 망치지도,
내 마음을 보여준 이에게
되려 상처받는 일도 없었다.
돌처럼 굳은 마음은
그만큼 단단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제는 나도 아빠의 무뚝뚝함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의 인생과 삶의 상처가 얼룩진
그 굳어버린 마음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어릴 때 느껴지던 그 머나먼
아빠와의 ‘거리’가
조금은 줄어든 것만 같다.
내 딸은,
그렇지 않다.
그 조그마한 아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좋으면 좋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온몸으로 표현한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칭찬을 바랄 때도,
세상 잃은 듯한 눈물에 위로가 필요할 때도,
그 낙차 큰 감정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나는 종종 망설인다.
감정이라는 언어에 너무 오래 침묵했더니,
표정을 짓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딸과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겹겹이 쌓인 굳은살에 막히고,
그 사이엔 ‘거리감’이 내려앉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뎌진 감정을
다시 꺼내보고 싶었다.
말 대신 글로라도
내 마음의 온도를 되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그 굳은살을 조금씩 밀어내며
다시 사람의 온도를 느끼려는 중이다.
이걸로
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될 수도,
내 마음에 상처가 덧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도 나는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다.
한 아이의 눈물과 웃음에 반응하는
아빠로 살아가기 위한,
내게 가장 용기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