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노래는 시간을 관통한다.
단순한 멜로디 하나에 추억이 담기고,
한 소절 가사에 그날의 나를 다시 찾곤 한다.
나는 노래를 듣고, 부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가사의 내용을 채 이해하지 못했던 코흘리개 시절부터였다.
누나들이 방에서 틀어놓던 유행가,
내가 처음 빠져들었던 젝스키스의 음악들.
그 노래들을 흉내 내며 따라 부르는 것이
내게는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노래는 나에게, 감정을 더듬고 꺼내는 도구이다.
어린 나는 노래를 통해 감정을 배웠고,
지금의 나는 노래를 통해 감정을 푼다.
특히 슬픈 가사에 깊이 빠져들어
평소에 꺼낼 일 없던 마음을 흘려보내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 한편이 맑게 정리되곤 한다.
또 노래는
그 시절의 공기, 냄새, 온기까지 담아둔
작은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듣게 된 한 곡이
그때의 나를, 그 공간을, 그 감정을
한순간에 데려온다.
빅뱅의 ‘거짓말’을 들으면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어깨를 걸고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듯 부르던 그 밤들.
큰 무대가 부럽지 않았던 작은 노래방,
서툰 청춘의 설렘과 들뜸까지
그 멜로디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아빠도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시골에 살았지만, 가끔씩 가족들을 데리고
면소재지에 하나 있는 낡은 노래방에 가셨다.
아빠는 트로트를 즐겨 부르셨다.
굽이진 감정선이 많은 그 노래들은
왠지 모르게 아빠의 삶과 잘 어울렸다.
아픔이 많았던 인생,
그것들은 이해하면 할수록
그 목소리는 흥겨움보다
묵직한 사연이 된다.
어릴 땐 몰랐지만
이제는 종종 생각하게 된다.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서툴렀던 아빠는
그 노래들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슬쩍 흘려보낸 건 아닐까.
잊혔던 감정들과 지나간 시간을
노래라는 틀 안에서
잠시 꺼내본 건 아닐까.
내가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고 점점 더 흩어지며,
아빠와 노래방에 갈 기회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날 때면
밀렸던 이야기를 풀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상상한다.
아빠와 다시 노래방에 간다면 어떨까.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울컥하고,
그리고 아주 따뜻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에겐 노래를 함께 나누는
또 다른 ‘아이’가 생겼다.
딸아이를 재울 때면,
내가 좋아하던 노래를 조용히 불러준다.
아이의 숨결에 맞춰 박자를 조절하고,
그 작은 귀에 내 목소리를 담는다.
그 순간은,
내 하루의 마지막 위로다.
어느 날,
딸이 그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뒤차가 경적을 울려도~“
반쯤은 엇나간 멜로디를 뜻 모를 가사에 얹어,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눈물짓게 하고, 위로가 되던 그 노래가
이제 아이의 입안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음 어딘가에서 따뜻한 기운이 피어난다.
이렇게 감정은,
때론 말보다
멜로디에 더 진하게 배어 있다.
아빠와 나, 그리고 내 딸까지—
우리는
노래라는 작은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우리를 묶어주는 그 노래가 흐르고 있다.
들리지 않아도,
그 멜로디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