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아빠’의 차는 카니발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아홉 식구를 모두 품을만한,
몇 안 되는 차종이었다.
나는 지금은 지도에서도 사라진,
수몰된 작고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시려는 마음이셨을거다.
아빠는 그 카니발에 우리를 태우고선
이리로 저리로 돌아다니셨다.
유독 장거리 운전이 많았던
아빠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중 하나는,
아픈 동생을 데리고
주변 도시 병원에 치료받으러 가던 장면들이다.
유달리 야무졌던 동생.
작은 사고 하나가,
그 아이의 세상에서 소리를 지웠다.
동생은 청각장애를 가졌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동생은 부모님께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들의 장애를 온전히 인정하기가 어려웠을까.
바쁜 일상과 많은 자녀 틈에서,
막내에게 더 주지 못한 사랑을 후회하셨던 걸까.
부모님은 동생을 위해 광주로, 서울로 달리셨다.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낯선 도시를 헤매던 그 때,
그 공기엔 눈물 없이도,
슬픔이 스며 있었다.
계속되는 언어 치료에도,
동생은 점점 더 확실한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그 사실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픈 시간이었다.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이 더 또렷이 남은
또 하나의 순간이 있다.
외할머니의 부고를 전해들은 날,
장례식장을 향해 달려가는 카니발 안.
흐느끼는 엄마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외할머니는 남편을 일찍이 여의시고,
일곱 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자신의 고생과 한을 빼닮은 엄마를
그녀는 특별히 걱정하고 더 아끼셨다.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각별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그 카니발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흔들리던 엄마의 어깨와,
무언의 위로를 건네던 아빠의 어깨가 나란히 있었다.
말없이,
아빠는 우리 몫의 감정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그 등 위에 얹혀진 그 무게를
눈물도 없이 감당하고 있었다.
말보다 옆에 선 그 존재만으로
묵묵히 위로하던 사람.
눈보다 촉촉한 가슴으로
눈물을 삭히던 사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린 내가 가장 닮고 싶었던 모습이,
바로 그 아빠의 등이었다.
나도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어느 출근길.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차 안에서 문득 거울을 본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스치는 내 모습에,
그 넓은 등이, 그 묵묵한 온기가 어렴풋이 겹쳐졌다.
내 어깨도 아빠의 것처럼 충분히 넓어졌을까.
그날, 카니발처럼
누군가 맘놓고 감정을 덧칠할 여백이 되어줄 수 있을까.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그 자리에서
나도 누군가의 등이 되어본다.
문득,
그리움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