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담긴 사랑

안마

by 위로한줄

딸은 요즘 밤마다 “다리, 다리!”를 외친다.

그러고는, 한쪽 다리를 내 무릎 위에 툭 올려놓는다.

참 세심하게도 주무를 곳을 지시한다.


성장통일 수도, 하루의 피곤일 수도 있다.

딸은,

이유 모를 그 아픔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맡긴다.

잠들 때까지, 말없이, 한참을 주물러 달라고 한다.


손에 관절염을 앓았던 아내는 일찌감치 딸 시중드는 것을 포기했고,

그 몫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엔 솔직히 피곤하고 귀찮았다.

하루 종일 세상과 부딪혀낸 몸으로

까만 밤에, 그것도 베개에 머리를 붙이고는

또다시 힘을 쓰는 일은 선뜻 나서 지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다리를 못내 다시 주무르게 하는 건 아마도

오늘 하루, 먹여 살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주지 못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딸의 다리를 주무르다 팔에 쥐가 날 때쯤,

엄마를 안마하시던 아빠의 손을 떠올려 본다.

아빠, 그리고 그 손.


엄마는 안마를 좋아하셨다.

“허리 좀 주물러라.”

“어깨가 뭉쳤다.”

어릴 때부터 자주 말씀하셨지만,

나는 몇 번 건성으로 누르고는 금세 손을 뗐다.

힘들다는 이유로 정성스레 해드리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빠는 달랐다.

매일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엄마가 누우면 늘 그 옆에 앉아,

묵묵히, 오래도록 엄마의 몸을 주물러주셨다.


나는 그때, 그런 아빠가 조금은 낯설었다.

무뚝뚝하고 다정함이라곤 없었던 아빠는

왜 밤마다 정성을 다하는 걸까.

그저 습관일 거라, 혹은 책임감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딸의 다리를 주무르며

그 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말로 하지 못하고, 얼굴로 드러내지 못하던 감정을

손끝에 조용히 담아내는.


한평생, 고생만 안겨줬던 아내에게,

오늘도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리며

아픈 몸을 돌보지 못한 그녀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없던 아빠는

그 손끝에 진심을 담아 엄마를 안아주고 있었던 거다.


나는 지금 딸의 다리를 주무르며

작은 근육의 긴장을 느끼고,

조금씩 가라앉는 아이의 숨결을 따라간다.

어느새 두터워진 아이의 종아리를 느껴본다.


피곤한 하루의 끝,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사랑은

어쩌면 바로 이 손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밤의 안마는,

아빠가 나에게 남긴 사랑의 방식이자

이제 내가 이어가는 사랑의 언어다.


그 마음을, 그 사랑을

아이가 알아채지 못해도 괜찮다.

말이 서툰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방식이기에.


그렇게 오늘도,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을

조심스레 손끝에 담아본다.


이전 09화뒤차가 경적을 울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