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살아낸 세상

엄마

by 위로한줄

쥐덫에 걸린 쥐를 맨손으로 갖다 버리던 여자.

좁아터진 부엌에서 세상 그 모든 것을 해내던 여자.


다섯 남매의 엄마,

종갓집의 맏며느리.

그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꿈 많던 시골 소녀는

많은 형제들 틈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그게 끝이었다.

가난은 늘 진학보다 생계를 먼저 데려왔고,

엄마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농사짓는 집으로 시집을 왔다.


사랑만으로 선택했지만,

사랑만으로 견디기 힘든

삶이 먼저 들이닥쳤다.

낯선 가족, 낯선 땅,

그 모든 것을 품어야 했던 나날의 시작이었다.


시부모님 모시고,

논밭 매고,

다달이 돌아오는 제사 준비에,

편한 날 하루 없는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다섯 남매를 키웠다.


몸이 아픈 날에도,

그녀는 쥐고 있던 수많은 이름을 내려놓지 못했다.

엄마, 며느리, 아내, 일꾼.

그 이름들은 잠시도 그녀를 쉬게 두지 않았다.

이름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이름마다 놓지 못한 책임이 있었다.


돈도, 감정도, 체력도 끝없이 소모되던 지난한 시간.

엄마는 끝까지 버텨냈다.


농사도, 육아도, 제사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똑 부러졌고, 야무졌다.

사람을 다그칠 줄도 알았고,

때로는 속상해서 눈물도 잘 흘렸다.

강단 있고, 여린 사람.

그 다채로운 면들이

엄마라는 사람을 완성했다.


누군가는 그 완벽함이

자신의 며느리를 힘들게 했을 거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겪은 고생만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짜 어른이었다.

며느리에게 음식 하나, 설거지 하나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시간은 공평하고, 늘 잔인하다.

그 초인 같은 존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리는 어느새 흰 세월이 내려앉았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그것처럼

주름이 얼굴을 덮어갔다.


다섯 남매의 엄마보다는

일곱 아이의 할머니가 가까워졌다.

그녀를 평생 괴롭히던 제사도 더는 없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 했던 시부모님도

깊은 곳에 잠드셨다.

그 어깨를 짓누르던 이름들이 어느새

시간에 떠밀려온 바람결에 흩어졌다.


엄마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어느새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모두를 휘어잡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세월에 꺽였는지, 아니면 익었는지,

이제는 더없는 사랑을 주는 목소리가 됐다.


세월은 그렇게, 엄마를 할머니로 만들었다.

그 생기마저, 조금씩 앗아가며.



내 등 뒤에 서서

내 모든 것들을

묵묵히 응원하는 엄마를 바라보다,

문득 눈이 시려진다.


한 때, 내 삶의 선장이자 지휘자였던

그녀의 뒷모습에 마음이 시리다.


엄마는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가 닿기 힘든 곳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엄마’다.


그녀가 긴 세월을 쏟아

우리를 위해 빚어낸 사랑과 희생은

다섯 남매 마음속에서

다섯 배의 무게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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