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생활관 한 귀퉁이에 자리한 전화 너머로
할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일주일 전,
휴가 중 찾아뵈었던 할아버지의 안부가
그날따라 불현듯 궁금해졌다.
평소 그토록 무겁게 느껴지던 수화기를 들었다.
한층 더 무거워진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내 가슴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노년의 병으로 병원에 머무르시던 할아버지는
끝내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다.
운전병으로 복무하시던 중,
적의 총탄에 한쪽 다리를 거의 잃으셨고,
그 이후로 평생을 절룩이며 살아오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몫까지
할머니도, 아빠도
조금은 더 무겁고 험한 삶을 견뎌내야 했다.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아빠보다는 조금 더 다정한 분이었다.
시집살이로 힘들어하던 엄마를
몰래 살뜰히 챙겨주시던 분.
엄마는 지금도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집구석에서 제일 따뜻했던 사람’
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렵게 얻은 장손이었던 나는
유독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다 큰 손주가 칭얼거릴 때면
아픈 다리로 나를 업고 절룩이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무뚝뚝한 얼굴 너머에 담긴 사랑이
그 넓은 등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시간이 흐르며,
그분은 점점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다.
새벽마다 느릿느릿 집앞을 거닐던 모습도,
“불 끄고 다녀라”, “문지방은 밟는 법이 아니다”
이제는 기억 속 장면이 된, 그 잔잔한 잔소리들.
마지막까지 누운 채 하루를 보내시며
고통과 불편을 묵묵히 견뎌내셨던 할아버지.
그분이 떠나시던 날,
어쩌면 가장 먼저 자유로워진 것은
병든 다리가 아니라,
말없이 감내하던 그분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 가족 모두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남긴 사랑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그 온기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같았다.
발인하던 날, 영정 사진을 들고 앞서가던 그 때,
끝없이 흘렀던 그 눈물은 아마
더 받지 못할 사랑보다는,
한순간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사랑때문이었다.
이제는 내 아이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 선다.
할아버지도, 무덤도 낯설기만 했던 딸아이는
“여기에 할아버지가 있어?”
하고 물었다.
다시 한번 그를 떠나보낸 빈자리를 확인하며,
이미 식은줄만 알았던 두 눈이 남몰래 뜨거워진다.
할아버지를 본 적도, 느낀 적도 없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그가 내게 남긴 사랑의 온기를
조용히 건넨다.
그가 내게 한없이 베풀었던
그 조용한 사랑을
조금씩 품어본다.
그게 그를 추모하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