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종손
6대 종손.
그 이름이
마을 입구 비석처럼
내 등에 얹혀 있었다.
내가 자란 마을은
반절 이상의 사람들이
같은 성씨로 이루어진
씨족마을이었다.
나로부터 6대조 할아버지 형제가
터를 잡으신 후로
고단한 역사를 이기고
나름 번성했었다.
마을 곳곳에는 선조들의 향기가 배었고,
마을을 둘러싼 산 여기저기에
조상들의 선영이 깃들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둘째였다.
그래서 그 길게 쌓인 역사의 짐에서
나름 자유로울 수도 있었다.
큰 할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면서,
그 짐은 할아버지에게로,
다시 아빠에게로 흘러왔다.
달마다 제사가 있었고,
명절에 차례를 지낼 때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다
수십 명의 친인척들이
마지막에 우리 집에 모여
절을 올리고는 했다.
삐뚤빼뚤 내 이름을 겨우 쓰던 어린 나이에도
그 행사의 중심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내가 있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내 어깨에 얹힌
종손의 무게는
살포시 내 가슴을 짓누르곤 했다.
시간이 흐르며 마을도 변했고,
삶의 자리도 흩어졌다.
댐건설로 인해 마을은 물에 잠기고,
우리 가문의 오랜 시간도 함께 잠들었다.
지독히도 엄마를 괴롭히던 제사도 모두 사라져,
시제라는 하나의 이름만 남게 되었다.
마을을 빙 둘러 보듬어 안으시던
할아버지들의 무덤도
낯선 산 한 모퉁이에 함께 모셨다.
부모님은
묵묵히 그 모든 일을 감당하셨다.
“저 위에 계신 할아버지는...”
엄마는,
그 선산에 갈 때마다
나의 선조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래봐야 일 년에 한두 번이라
기억에 담지는 못했지만,
본인들이 지켜온 것을 전하고픈 그 마음만
또렷이 내 안에 남았다.
나는 지금,
내게 지워진 비석의 이름보다
내가 써 내려간 삶의 이름들을 되새긴다.
아들 손주를 내심 바라시는
부모님께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우리가 결정할게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시제에
바다 건너 먼 땅에서 멋쩍게 묻는다.
“시제는 잘 지내셨어요? “
그분들은 그 막중한 책임에
내가 등을 돌렸다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제에 등을 기댄 채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아침마다 눈을 비비는 딸아이의 투정이
나의 삶의 이유일 뿐이다.
그럼에도,
죄스런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비석 아래 모인 그 사람들,
족보 안에 적힌 그분들이
나를 보던 그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잘 알기에.
부모님들이
묘지에 자란 풀을 다듬는 손길에,
넘칠 듯이 부어지는 그 술잔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시제가 열리는
벚꽃이 흐드러질 즈음이면 마음이 쓰이고,
묘지 앞 할아버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산다.
그들이 내게 건네주신 삶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내고자 한다.
내 등 뒤에,
오랜 비석이 햇살에 빛나고 있다.
내 앞에 선 딸아이의 미소가
그 빛에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