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나의 꿈은 한의사였다.
정확히는, 아빠가 지어준 장래희망이 한의사였다.
옷 하나조차 스스로 고르지 못했던 나는
학교에 그 이름을 매년 적어내곤 했다.
한참을, 그것이 내 꿈이라고 믿었다.
나는 한 번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아왔다.
어른들은 그걸 “착실하다”며 칭찬하지만,
어쩌면 그건,
넘어지고 깨질 용기가 없는,
별빛을 쫓아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겁쟁이,
‘괜찮은 삶’에 안주하는 나태의 다른 말이었다.
아빠는 꿈꿀 기회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집을 떠나 도시에서 꿈을 찾던 아빠는,
생활고에 시달리시던 할머니의 부름에
다시 현실로, 시골로 돌아오셨다.
동생들 등록금 걱정에, 반복되는 고된 농사일.
아빠 자신의 꿈은
밭고랑 사이 어디쯤에 묻혔다.
그런 아빠가 내게
“한의사 돼라”
며 말씀하셨던 마음을 짐작해 본다.
그 시절, 시골에서 흰가운에 귀한 약재를 다루던 한의사는
모두가 존경하고 성공이라 여겨지던 직업이었다.
자신이 미처 가지 못한 길,
그 길을 너만큼은 가보았으면 하는 바람일까.
가장 반짝여보였던 “흔한 이름”을
무심코 건네신 걸까.
“밝은 태양처럼 반짝이는 꿈”
빨갛게 물든 노을을 향해 달리던 퇴근길 차 안,
'아무것도 늦지 않았다'라는
꿈에 대한 노래가 흘렀고,
문득 두 눈에 왈칵 눈물이 흘렀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무난했던 나와 나를 둘러싼 공기는
어느새 무엇보다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
내가 그저 견뎌낸 어제 그리고 오늘이,
목적지 없이 또다시 달릴 내일이,
그 순간, 너무 창피했다.
밤하늘 별을 세어볼 틈조차 없던 아빠와 달리,
충분히 길고 조용한 밤을 지새우고도,
결국 꿈 없이 새벽을 맞이한 나.
주어진 길 위에서 고요히 멈춰 있었던 나.
그것은,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더욱이 ‘아무것도 늦지 않았다’는 그의 권유조차,
나에겐 여전히 너무 멀고 낯설기만 하다.
차갑기만 한 가슴으로 살아온 나는,
뜨거운 도전과는 한참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저 주어진 오늘을 살아낸다.
여태껏 쌓아 올린 현실의 벽은 더 높아졌고,
꿈은 나날이 멀어지는 별이 되었다.
그런 내가, 그런 나이기에,
딸에게 감히 바란다.
모두가 쫓고, 다른 이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부딪히고 아파하며 지켜가는 소중한 등불,
그게 무엇이든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한 꿈 하나
마음속에 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딸이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빠, 난 별을 쫓고 있어요.”
그 말 하나면,
꿈꾸지 못한 내 지나간 밤들을
그제야 비로소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