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남자는 엄마를 닮은 여자에게 끌린다.”
이 말은, 적어도 내게는 꽤 타당한 이야기다.
똑부러진 성격으로 사람을 이끄는 데 익숙한 사람.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바른 길만을 가는 사람.
아껴 쓸 줄 알고, 때로는 나를 단단히 잡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엄마였고, 지금의 내 아내다.
첫 만남의 그날을 떠올린다.
오랜만에 낀 렌즈 탓에 눈이 따가워 자꾸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점심 메뉴는 사전 준비도 못한 찜닭이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꺼내며 웃는 그녀는
그날의 어리숙한 나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 모습에서 무엇이 끌렸을까.
우리는 첫 순간부터, 조심스레 서로에게 닿아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끌렸던 이유를
나는 종종 ‘아빠’라는 존재로 설명하곤 한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조용한 날보다
사건과 사고가 많은 쪽에 가까웠다.
많은 가정이 그러하듯,
그 중심엔 아빠가 계셨다.
술기운에 선 보증,
누군가의 말에 혹해 시작한 무리한 투자.
그로 인해 더 어려워진 다섯 남매의 살림살이.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그 시절의 나는 거의 본능처럼 아빠를 원망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묵묵히 버텨낸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내게 슈퍼우먼 같았다.
지지 않는 대장이었고,
바른 길로 이끄는 호랑이 선생님이었으며,
우리가 기대던 느티나무 같은 존재였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얼굴뿐 아니라, 성격도 행동도.
줏대 없이 휘둘리고, 우유부단한 모습까지도.
그런 내가 엄마 같은 사람에게 끌린 건,
어쩌면 생존 본능이자, 내게 가장 필요한 균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본능은 참 다행스럽게도, 맞아떨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빠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한 건.
예전 같았으면 엄마의 잔소리에 맞서셨을 분이
이제는 조용히 듣기만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아빠가 밉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대신, 등에 얹힌 무게를
함께 짊어진 세월에 연민이 일었다.
몇십 년을 버텨온 그 나무는
우리가 기대온 단 한 그루가 아니었다는 걸.
아빠도, 흔들리면서도 결국은 바로 서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내라는 또 하나의 단단한 줄기 곁에 서 있다.
아내는 내게 또 한 명의 히로인이 되었다.
육아도, 집안일도, 건강도, 가계도.
무엇 하나 빠짐없이 꼼꼼히 챙기는 그녀에게서
나는 종종 엄마의 향기를 느낀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잔소리를 들으며,
문득 아빠를 떠올린다.
아내에게 기대어 있다는 사실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녀 역시 나에게 기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 서로의 의지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내일을 함께 견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