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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듬 Jan 10. 2023

안개의 노래

마침내《헤어질 결심》감상문



    자욱한 안개는 시야를 불분명하게 하고 모든 뚜렷하고 확실한 것들을 흐트러뜨린다. <헤어질 결심>은 안개와 같이 모호한 세상과 그 속에서 확실한 것을 좇는 인간들의 헛발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는 서래의 말은 언제나 뜻을 명확히 알 수 없게 아리송하다. 서래가 내뱉는 “마침내”가 적확하게 사용된 것인지, 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잘못 사용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녀가 입가에 띄우는 미소나 꼿꼿한 눈빛만이 무언가 진실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따름이다. 서래의 원피스는 청색으로 보이기도, 녹색으로 보이기도 하며, 울그락 불그락 솟은 산은 산 같기도, 거친 파도 같기도 하다. 안개의 도시, 이포는 해준을 병들게 하지만, 동시에 그가 관성적으로 되돌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편견은 모든 복잡하고 뿌연 것들로부터 ‘무언가 확실한 것’을 보고 있다는 우리들의 착각과도 같다. 편견이야말로 진실로부터 우리를 가리우는 안개와 같다. 이러한 확신들은 자신을 가두고 타인을 억압한다. 모호한 것 투성이에서 등장인물들은 각자 확실한 것들을 만들어가는데, 이들의 확신들은 모두 모종의 편견으로 미끄러지며 진실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해준은 ‘공감’할 줄 아는 형사였다. 의심하는 수완에게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서래는 영락없는 살인자의 모습이었지만, 해준에게는 아직 퍼지지 않은 잉크와 같은 슬픔으로 읽혔다. 피의자 신분으로 제 발로 경찰서로 찾아오는 서래의 꼿꼿한 행동에 해준은 의심을 서서히 거두었고, 의심이 걷힌 자리에는 애틋함이 싹텄다. 해준의 ‘너그러운’ 수사의 바탕에는 남편에게 종속되어 폭력을 견뎌온 이주여성의 처지에 대한 연민이 있었지만, 수완은 그것이 편견이고, “여성이라고 봐주는” 역차별이라며 항의했다. 과연 해준의 감정은 사건을 가리는 안개였던 것일까. 그것이 그것이 연민이었든 사랑이었든, 해준은 과감히 그것이 안개에 머물도록 사건을 거짓 속에서 봉합시켜버린다. 그리고는 해준은 서래와 헤어질 결심을 하며 ‘마침내’ 붕괴된다.


    ‘붕괴’이후, 해준의 서래에 대한 억지스러운 신뢰는 이내 억지스러운 의심으로 전환된다. 불태워진 서래의 ‘청록색’ 셔츠와 정돈된 살해현장은 낭자한 피를 두려워하는 해준을 생각하는 서래의 선의였지만, 해준의 편견 속에서 서래의 모든 사랑의 증거들은 범죄사실을 확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 어떤 ‘객관적인’ 증거도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너무나도 수상쩍은 사건의 정황들은 그녀에 대한 해준의 의심을 증폭시켰지만, 해준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진실을 결여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에서 한참 미끄러질 뿐이었다. 


해준: 사랑이 아닌 이유로 선택한 남편이고, 그 남편이 여기저기서 협박을 받고, 그러다 죽고. 작년하고 똑같네요? 좋아요……. 두 남편이 한 형사의 관할 지역, 그것도 멀리 떨어진 관할지역에서 자살하거나 살해됐어요. 누가 이렇게 됐단 얘길 들었다면 난 이럴 거 같아요. “거, 참 공교롭네…” 송서래씨는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서래: 참 불쌍한 여자네.


    서래의 말은 해준의 맥락을 따라가며 해준의 편견을 공유하고 있었던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서래는 이제는 해준이 잃어버린, 해준의 트라우마이기도 한 ‘공감’과 ‘연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붕괴 이후 서래를 향해 한참 비뚤어져버린 해준의 시선이 얼마나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보라는 듯, 해준과 관객의 편견을 꼬집는다. 이포에서 재회한 해준과 서래의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는 두 대사의 대치는 사랑이 막 끝난 이와 이제 사랑이 시작된 두 사람의 어긋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연수: 정신차리세요. 우리, 범인 잡았습니다! (…) 제발 그 여자한테 그만 집착하십쇼.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혹시 중국사람한테 무슨 편견 가지신 거 아닙니까? 

    여기서 이포의 형사 연수는 수완과 대조를 이룬다. 수완이 의심하는 사람이었다면, 연수는 의심을 거두려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수완은 누구든 불편부당하게 의심하고자 했지만, 연수는 중국 화교, 젊은 여성에 대한 과도한 의심 자체에 내재된 편견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경찰이라면 응당 모두를 ‘공평하게’ 의심해야만 한다는, 어쩌면 맹목적이기까지 한 수완의 굳센 신념마저도 편견의 산물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객관적’ 증거들은 편견을 강화시켰으며, 그녀의 사랑의 행위들은 도리어 모두 범죄를 증명하는 더욱 단단한 증거가 되었다. 그 어떤 ‘증거’도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하는 참조가 될 뿐이다. 이는 어떠한 사실의 누적이 편견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편견이 현실을 참조하여 사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도함을 보여준다.  


    해준의 수사에 개입된 감정들은 모두 이유 있는 믿음과 이유 있는 편견에 의한 것이었지만 각기 다른 방법으로 모두 사건의 진상에서 빗겨갔다. 해준의 확신들은 안개로 자욱한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해준은 호미산의 정상에 올라 서래를 등지고 섰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지만, 서래는 이내 해준을 뒤에서 껴안는다. 서래는 할머니의 전화기를 해준의 손에 쥐어주며 재수사하라고, 붕괴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 한다. “난 해준 씨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봐요.” 해준과 서래의 만남은 언제나 의심하고 의심받는 관계로써 매개되었다. 해준이 마침내 의심을 거두었을 때, 즉 서래가 피의자 신분에서 해방되었을 때 해준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따라서 서래는 스스로 다시 피의자를 자청한다. “나 그거(의심받는 거) 좋아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늘 하던 대로 피의자로.” 그러고는 그 의심이 영원히 풀리지 않도록 해준의 미결사건이 되어 깊은 바다에 던져지기를 택한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쓰러지고 으스러지는 붕괴와 함께. 모호한 존재가 되기를 택한다. 그렇게 스스로 해준을 스치고 감싸는 미지의 안개가 된다. 


    영화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자욱한 안개와 공감각적인 조화를 이루지만 역설적으로 영화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장 확실하고 뚜렷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영화 <헤어질 결심>은 서래가 부르는 안개의 노래와 함께 흐른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모호함에 있다는 뜻(은유, <다가오는 말들>, p.26)이라는 인간사의 역설과 같이, 영화는 모호한 것들 속에서 내리는 우리의 섣부른 확신들을 비춘다. 서래는 안개와 같이 해준의 움켜쥠 속에서 흩어져 달아나며 해준의 동정을 배신하고, 집요한 의심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의심하고 의심받는 관계라야 비로소 해준과 연결될 수 있는 서래는 자신이 해준의 영원한 미결사건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를 깊은 바다에 던져 아무도 찾지 못하게 했다.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은 서래가 붕괴된 곳을 딛고 서서야 마침내 이 말이 사랑고백인 까닭을 깨닫는다. 서래의 붕괴로 모든 것이 영원한 미결로 흩어지고 모호해지고 나서야 사건은 비로서 완결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다시 안개의 노래와 함께, 안개 속으로 돌아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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