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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듬 Aug 10. 2019

고교시절 일기

나는 왜 고교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가


나는 나의 고교시절을 회상할 적에 슬픔, 불행, 고통, 부자유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함께 당시를 묘사하곤 한다. 실제로 3년간 매일매일 적은 나의 일기장이 우울한 에너지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일부러 그러한 기억들만 부각하는 측면도 있다.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힘. 고통의 속성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내가 나의 과거의 고통을 객관화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지나치게 나를 피해자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때로는 힘들었던 순간에도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소중한 관계들, 따뜻한 기억들까지도 모두 아픈 기억에 압도되어 버릴까 두렵기도 했다. 


내가 힘든 고교시절을 보냈다고 말하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냐고, 왕따나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그냥 '평범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뭐, 아주 평범하지는 않다. 평균보다는 조금 더 억압적이고, 조금 더 경쟁적인 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그게 전부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 고등학교... 힘들죠."라는 머쓱한 답변이 돌아온다. '남들 다 지나는' 고등학교 3년, 나는 무진장 힘들게 보냈다. 이유없이 우는 날이 다반수였고, 3년 내내 자퇴를 고민했다. 대한민국 교육제도가 내 소중한 십대를 빼앗았다는 강한 박탈감과 분노가 나를 지배했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투쟁력을 전부 고등학교때 장전했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 무조건 나에게 고통만 주었으며, 나는 그릇된 교육제도의 절대적인 피해자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딱딱한 교과서에 대한 반항의 일환이었던 무수한 양의 독서도 나의 소중한 양식이 되었다. 그때보다 훨씬 시간적 여유가 많은 현재도 그때와 같은 꾸준하고 방대한 독서를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내가 고교시절 얻은 가장 값진 보물들이다. 다만, 나는 열거한 '고3의 유익'이 제삼자의 입에서 그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먹여지는 것에 저항한다. '고생 끝의 낙', '고난으로부터의 배움', '고통 속의 성장'을 말할 자격은 고통을 경험한 본인에게만 있다. 이것들이 무수하게 타인의 입에서 온갖 아름다운 수사와 함께 들먹여짐으로써, 지금까지 '불필요한' 고난들이 포장되고, 명백한 폭력들이 '청춘의 순간'으로 미화되어 왔다. 야자시간은 향기롭지 않다.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행복하지 않다. 덜컹대며 학교로 실려가는 학생들의 무거운 가방은 아름답지 않다. 


반드시 그만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경험해야지만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움은 얼마든지 즐겁고 재미있는 것일 수 있다. 


내가 고교시절을 '고통'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고교시절을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는 친구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같은 상황에도 느끼는 억압은 상대적이다. 주위 친구들에 비해 나는 유별나게 3년을 힘들어했다.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지만, 불행하다고 느꼈던 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유별나다'고 느껴지는 게 싫었다. 나의 고통이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보편적 경험. 개혁과 발전이 없는 정체된 교육의 썩은 내를 꽃내음으로 치환하는 가장 대표적인 위선적 수사가 아닌가 싶다. 살다가 가끔 고교생들의 부자유한 생활이 안쓰럽게 느껴지거든 '아름다운 땀방울'에 박수치고,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라톤 완주'를 격려하지 말고 죽음의 경주를 중단하는 데 힘써 주시라. 정말이지 고3이 무슨 벼슬이라고 가장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고3들한테 왕대접해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그 '안쓰러워하는 눈빛들'이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매일 느끼는 '자기 연민'으로도 족하다. 인간답지 못한 삶의 비애를 위로하시되, 칭송하지 마시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도와주시길.


나는 아직도 내 3년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쫓기듯 공부하고 있을 수많은 수험생 친구들과 재수생 친구들에게 부채감이 있다. 하지만 그 부채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해서 무언가 결핍된 느낌을 안고 나의 고교시절에 대한 글을 쓴다. 고교시절 일기장을 펼친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나는 현재 객관적으로 수험생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 3년에 매여있다는 느낌이 든다. 원해서 수험생활을 한 적도 없지만, 수험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수험생'이라는 타이틀 바깥으로 '던져졌고', 대학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그 허탈감, 허무함에서 벗어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난 아직도 그때에 대한 글을 쓴다. 그때의 '바깥'에서 그때의 글을 쓴다. 나의 수험생활은 아직 '내 손으로'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고교시절의 나로부터 독립하고, 그 기억이 아득해졌을 무렵, 그때를 한낱 무용담처럼 서술하고 추억하게 되지는 않을까. 시간이 더욱 흘러 그 상처가 아물고, 더 큰 상처들로 가리워질 무렵,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잖아'라고 말하게 될까 두렵다. 


어쩌면 내가 고통을 계속 기억의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것은, 내가 스스로 그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고 상처를 봉합하지 못한 채 시간에게 치료를 위임해버릴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알아서 치료하게 놔두는 것은 상처를 망각하는 일이고, 봉합하지 못한 채 망각된 상처는 흉터를 남기기 마련이다. 


나는 방치된채 흉터로 남아버린 상처를 돌아보며 '세상에는 원래 더한 칼부림이 넘쳐난다'고 애써 위안하고 우쭐대기보다 왜 그렇게 아파야만 했는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그 칼날에 현명하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고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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