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이야기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나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적이 있다. 오늘은 정문부터 긴 아파트 사잇길을 걸어 우리동 1층 경비실까지 걸어간 '신나는 꿈'을 꾼 기념으로 내가 아는 모든 검색창을 동원해 옛 나의 아파트 사진을 찾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아파트 아파트
나는 태어나 1살이 되던 때에 이곳에 와서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다. 안타깝지만, 나의 살던 고향은 영아아파트인 셈이다. 전에는 아파트가 고향이라 불행하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남들처럼 시골 어딘가 논밭을 걸어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푸근한 할머니집이 고향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우리 친할머니는 15분 거리 2층 양옥집에 사셨고, 외할머니는 집 앞 시장 골목에 사셨다. 시골이 없던 나에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정감 없이 생긴 아파트는 천상 고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이 아파트와 함께 살던 이웃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 거대하게 못생긴 복도식 아파트에서 우리는, 나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내가 살던 5동은 아파트 정문에서도 후문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했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는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나는 늘 뛰어다녔다. 그 시절 아파트가 모두 그러하듯 지상주차장 사이에 아스팔트에는 태양을 피할 곳 하나 없었다. 그러니 뛸 수밖에. 그래서 나는 아파트 뒤편으로 자주 다녔다. 앞쪽으로 태양이 내리쬐면 뒤편은 언제나 응달이었으니까. 다행히 정확하게 아파트 크기만큼은 시원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그 후엔 역시나 뛰어야 했다. 그나마 달궈진 놀이터 모래를 밟고 철봉까지만 달려오면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떨어지는 송충이를 잘 피해야 했지만.
나는 7층에 살았다. 사진에 보면 우리 집이 정면으로 보인다. 7층 첫 번째 집이 바로 내 방 창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 창문으로도 그 앞에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시야에 살지만 나는 여전히 창문 블라인드를 치고, 주변을 살핀다. 어릴 적부터 내 방 창문으로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신경 쓰고 살았던 버릇 때문이다. 우리 복도에 사는 모든 사람은 내 방 앞을 지나갔다. 옆집 오빠들부터 710호 집 아기까지. 여름에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그들도 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메리야스에 팬티만 입고 있든 말든 말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눌러놓고는 누가 먼저 1층에 내려가나 늘 시합을 하던 천방지축이었다. 10칸씩 계단을 점프했고, 계단 난간을 말을 타듯 매달려 미끄럼틀을 탔다. 늘 반질반질하게 니스칠이 되어있던 나무 난간은 청소아줌마들이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내 더 잘 미끄러졌다. 그렇게 내려가면 경비아저씨가 초소에서 싸 오신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는 '안녕하세요' 하며 오른쪽 가슴에 달린 노란 명찰을 훑어본다. 아저씨는 인사를 잘한다며 칭찬을 해주신다.
특유의 담배와 쿰쿰한 아저씨 냄새를 맡으며 경비실을 지나 괜히 계단 밑 수돗가에서 손을 한 번 적신다. 주차된 차 사이를 가로지르면 아파트 가운데 만들어 놓은 작은 공원이 나온다. 이 작은 공원은 아직까지 나의 정신적 고향으로 남아있다. 아마 내가 이곳에 있은 시간이 내 방에 있던 시간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 작은 공원에는 버찌나부, 개복숭아, 진달래, 계암나무 등 온갖 꽃과 나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이 작은 숲 덕분에 나는 봄을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 모를 분홍꽃이 있었으니까. 나는 여기서 고무줄을 하고 나무도 올라타고 땅도 파고 꽃도 찌으며 자랐다. 그리고 동네 언니, 오빠들과 공원을 빙빙 돌며 이어달리기에 숨바꼭질까지 했다. 우리만의 작은 운동회를 말이다. 이 운동회를 하던 공간은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방황의 장소가 되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헤어지기 싫은 나의 연인과의 집 앞 공원이 되어주었다. 이 공원에서 촛불과 함께 100일을 하트를 그려주던 남자애는 잘 살고 있을까? 아주 잘 살고 있다. 내 옆에서.
누군가 나에게 죽기 전에 가장 행복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영아아파트에 살던 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매일 놀이터에서 흙을 파고 있던 동생과 놀이터 앞 돌 위에 앉아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던 30대의 젊은 엄마. 이제는 볼 수 없는 복순이와 두리가 내 발소리만으로 꼬리를 치고,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저 멀리서 걸어오던 곳이니까. 오늘 꿈이 신이 났던 건 정문부터 긴 아스팔트를 지나 시원한 경비실까지 뛰어온 어릴 적 나의 기분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될 때쯤 다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했던 추억은 나이가 들수록 이토록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