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두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by 기억 저장중
이런 제목이란~

작가들은 역시 다르구나. 이런 제목을 떠올릴 수 있고.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제목부터 도저히 내가 생각해 낼 수 없는 그런 난해함이 있었다. 제목의 난해함과는 달리 책의 내용들은 너무나 쉽게 훌훌 읽어버릴 수 있는 에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년 동안 일본 한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를 묶었는데, 3년에 걸쳐 <IQ84>를 쓰고 나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에세이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에세이는'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소소한 유머에 풋하고 웃음이 터졌다. 슴슴하지만 구수한 향과 깔끔한 뒷맛의 우롱차처럼, 그의 에세이 또한 담백함 그 자체였다. 읽는 내내 작가의 일상과 생각들을 엿보며, 다 읽을 때쯤에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내적 친밀함까지 들었다.



양배추 여인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

나의 카톡 프로필을 오랫동안 차지했던 문구였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라는 영화에서 노인으로 분장한 앤서니 홉킨스의 대사이자, 이 에세이 첫 장을 시작한 문구이기도 하다. 뭐 세상에 멋진 구절이야 너무나 많지만 무라카미가 이 문구를 에세이 첫 장에 선택한 것은 그다음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채소라면 어떤 채소 말이에요?"라며 다소 엉뚱한 질문으로 받아친 상대방에게 "뭐 양배추 같은 거려나?" 하며 얼버무리는 대화는 예상과 달리 흐지부지하게 끝을 맺는다. 멋진 대사만 하고 끝났어도 좋았겠지만, 하루키는 그런 뻔한 내용이 아니라 은근히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고기보다 채식을 자주 선택하는 그에게 채소는 절대 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채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채소마다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고 말하며 그는 채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까지 조언한다. 하하하! 채소의 시선이라니, 이래서 그는 작가가 될 수 있었나?

바다표범과 키스라니 으웩

'바다표범과 키스'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사실을 어떻게 보면 시시하기까지 한 그의 일상의 이야기다. 우연히 바다표범 오일의 효능에 대해 알게 된 그가 오슬로까지 가서 바다표범 오일을 사 왔다. 아침마다 한 숟가락씩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데, 도저히 비려서 오일을 먹으면 마치 바다표범 한 마리가 배 위로 올라와서 고개를 젖히고 억지로 입을 벌려 뜨뜻미지근한 입김과 함께 축축한 혀를 입안으로 쑥 밀어 넣은 것처럼 비렸다고 한다. 겨우 약한 번 먹은 일로 이런 에세이를 써내려 다다니 정말 이야기꾼이 따로 없다. 이처럼 소소하게 어쩌면 시시한 에세이 하나하나가 모여 책이 되었고,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나의 평범한 하루하루도 모여, 그리고 지금 이런 시시한 나의 독후감들도 언젠가는 뭔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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