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두 번째 이야기
이웃사촌: 사촌처럼 가까운 이웃. 즉 아주 가까운 이웃을 뜻하는 말.
사당동 우리 집은 진짜 이웃이 사촌인 집이다. 우리 친할머니는 아홉 살이 되던 해 전쟁으로 부모를 여의고 민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결혼할 정도로 자랄 때까지 함께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다가 혼기가 차서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아홉 살에 할머니가 사당동에 오셨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그의 조상 대대로 이곳에 정착해 살아오던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러니 이 지역은 나에게 진짜 피가 섞인 가족과 오랫동안 함께 살을 부대며 살아온 이웃들이 있는 우리 가문의 고향인 것이다.
엄마는 시집와 내가 한 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집에서 큰집과 아래 위층을 쓰며 시집살이를 했다. 식구가 하도 많아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을 해야 했다며 아직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고개를 절레절레하신다. 일하는 식솔부터 친척들까지 손님도 많았고, 음식하고 상 차리고 치우면 다시 밥때가 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고향인 영아아파트를 기준으로 길을 건너면 할아버지의 동생 즉, 작은집의 큰아버지가 사셨고, 거기에서 한 골목만 지나면 우리 집 큰아버지가 계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10분 거리에 작은집의 작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는 셋째 고모가 사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할머니가 학교 근처로 이사해 홀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 집 앞 큰길에서부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가게 아저씨부터 동네 아줌마들까지 모두 우리 가족 누군가의 이웃사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 다들 이렇게 가족들이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인데, 어릴 적 나에게 사당동은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잘 살던 동네는 아니었기네 애써 돌려 말할 때가 더 많았다.
사당동은 이수역의 큰 대로를 사이에 두고 방배동과 나란히 있다. 지금에야 방배동이 유명하지, 그 시절 방배동은 똑같이 논과 밭 과수원뿐이었다고. 방배동에도 이웃사촌들이 사는데, 할아버지 친구와 결혼한 할아버지 형제의 자식들이다. 지금도 집안의 대소사에서 종종 사촌 고모님들 얼굴을 뵙는데, 어릴 적 뵈었던 기억 때문에 인지 여전히 얼굴이 익숙한 것이 신기하다. 이런 주변 환경 때문이라도 나에게 영아아파트는 고향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당시로 따지면 신식 아파트에 살긴 했지만, 모든 집안의 대소사는 할머니댁을 기준으로 이뤄졌고, 여전히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상을 차렸으며, 할머니댁 마당에는 감나무와 작은 텃밭, 장독대 그리고 아궁이가 있었다. 아빠는 어릴 적 뛰어놀던 뒷산에서 칡을 캐고 버섯을 따오셨다. 서울에 살았지만 마치 시골에 산 것 같은 집이 바로 우리 집인 것이다. 여전히 아빠는 영아아파트 그곳을 재개발한 아파트에 사신다. 그래서 다행히도(?) 우리 집안의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바로 그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