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아파트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 그 세 번째 이야기

by 기억 저장중

나는 손버릇이 나쁜 아이였다. 일곱 살 여름, 나는 친구와 아파트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더위에 지쳐 상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젖힌 아이스크림 통에는 내가 좋아하는 빠삐코, 쌍쌍바, 스크류바가 가득했다. 나는 살짝 고민했지만 역시나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빠삐코를 입에 물고는 다시 놀이터로 향했다. 그 순간 내 뒤에서 어깨를 툭툭 치는 무서운 얼굴의 아저씨가 있었다. 바로 슈퍼마켓 주인아저씨였다.

"꼬마야 돈은 내고 가야지?"

돈이라.. 일곱 살 꼬마의 주머니에 있을 턱이 있나. 나는 그 길로 아저씨를 따라 슈퍼마켓 앞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 서서 손을 들고 서있게 되었다. 물론 외롭지는 않았다. 친구도 함께 있었으니까.

얼마 지났을까. 엄마가 어찌 아시고는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러고는 주인아저씨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손버릇이 왜 나빠졌는지를 열심히 설명하셨다.

사실 우리 아파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따라 5분만 걸으면 큰아버지가 운영하던 대형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 이름은 양지슈퍼, 이곳은 사당 3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트였다 (정육점도 있었고, 배달 서비스도 진행했다). 그곳은 나에겐 놀이터이자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때문에 나는 언제나 공짜로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어왔고 다른 곳에서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슈퍼 사장님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그제야 노여움을 풀었다. 나에게 경제관념이 생긴 것은 아마도 그 벌을 받은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취할 때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제관념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도 아저씨가 가게를 보실 때는 들어 가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지금 생각하면 아저씨는 다 이해하셨을 텐데, 제법 나이가 먹어서까지도 아저씨의 얼굴을 보면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 첫 도둑질의 순간을 기억할지 모른다.

엄마까지 대동해야 했던 나의 화려한 손버릇. 하지만 그 덕분에 그날의 햇빛과 쿰쿰한 아파트 상가의 냄새, 세탁소를 지나 어둑한 상가 복도에 놓여있던 아이스크림 냉장고, 그 문을 열기 전의 그 설렘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위쪽에 붙어있던 얼음을 손으로 쓱 쓸어 친구 목에 던져주었던 장난들까지 모두 생생하게 떠올랐다.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떠오르는 나의 어릴 적 기억, 나는 여전히 그리고 지금도 영아아파트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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