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철학 수업-Nietzsche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의심의 철학자'라 불린다. 그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고 굳게 믿어 왔던 진리와 가치,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진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이라는 정답은 없지만, 마흔을 앞두던 때 나는 더 이상 이직할 곳이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팀장으로서 점점 팀원들과 인간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차이, 집도 회사도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차오르고 있는 시점이었다.
신은 죽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종교가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언제나 '자신교'라고 답한다. 내가 정의한 종교인데, 신이 아닌 나, 자신을 믿는 사람이다.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릴 적 문득 신이라고 모셔지는 사람의 외모가 이국적이라는 것에서 시작했다. 예수님도 외국인, 부처님도 내 눈에는 외국인처럼 보이는데 왜 사람들은 외국인을 신으로 모시고 믿는 거지?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나약한 인간인 나는 예수님, 부처님, 하느님을 가리지 않고 빌기 시작했다. 셋 중 누구라도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빌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건강하기를, 모든 일이 잘 되기를,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기를 등등 욕심이 많아지니 나 자신보다는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나와 같은 나약한 인간에게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니체의 철학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신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인간은 죄를 지은 병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의미하고 두려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신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더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는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니체가 자신을 광인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고 말한 이유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초인은 과거나 미래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다. 초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이다. 나 또한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던 때가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모자란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일기를 쓰듯 마음대로 써 내려가는 독후감들이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바다. 이 책은 처음에는 어려워서 한 번 읽었고, 두 번째는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있어 한 번 더 읽었고, 세 번째는 잊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책장에서 이렇게 여러 번 읽은 책은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그랬다. 니체라는 위대한 철학자의 이야기라 그랬을까, 아니면 마흔이라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