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사당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세 번째 이야기
"아줌마 어디가세요? 오늘은 예쁜 빨간 구두를 신으셨네요?
향수 냄새가 너무 좋아요"
나는 동네사람들이 우리 엄마는 몰라도 '애'는 아는 그런 유명인사였다. 오지랖이 넓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번죽이 좋게 말을 걸었고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그 질문공세가 대단했다. 여우처럼 어른들 기분 좋을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서로 칭찬을 주고받았다. 내가 먼저 남을 칭찬하면 남도 나를 칭찬해 준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인 7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린이에게는 가만히 있기에 살짝 지루한 시간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시간에 땅을 보거나 내려가는 숫자를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가만히 참지를 못했다. 사람들이 없으면 손잡이에 원숭이처럼 매달리거나, 엘리베이터를 불러 놓고 7층에 서면 마치 시합을 하듯 나는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며 경주를 했다.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서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는 또 하나의 놀이터였던 것이다.
우리 층 옆 라인에는 멋쟁이 아줌마가 사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흔 초반쯤 되셨을 거다. 긴 웨이브 머리에 늘 하이힐과 패턴이 있는 스타킹을 매치했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아줌마는 너무 멋졌다.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하고 다니지 않지? 물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저런 엄마가 있는 누군가가 부러웠었다. 그래서 그 아줌마만 엘리베이터에 타면 나는 열심히 칭찬을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엄마는 당시 가까이 살고 계신 할머니댁에 매일 식사를 차려드리러 갔고, 할머니는 엄마가 새로운 옷만 입고 가면 새로 샀냐고 물으시는 통에 엄마는 늘 같은 옷을 입고 지내셔야 했단다. 처녀 적 멋쟁이 엄마는 시집와 교복보다 못한 낡은 옷을 매일 입고 동네를 누볐다. 꾸미면 너무 예쁜 엄마인데, 그 좋은 시절 그런 옷들만 입고 살았다는 게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 아무튼 엘리베이터의 인연들은 나중에 엄마와 함께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엄마에게 그 낯선 어른들을 소개하며 빛을 발휘했다. 그분들은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해주셨고, 모두 한 목소리로 "딸이 너무 성격이 좋아요"로 시작하며 나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신기해하며 여전히 지금도 그 일화들을 이야기한다. 나도 지금까지 나 같은 어린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좋아해 직업을 에디터로 선택한 것일까. 문득 뚱딴지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어린아이들이 얼굴을 모르는 어른은 물론이고, 얼굴을 아는 어른도 조심해야하는 이런 때에 나의 어린 시절은 겁 없는 녀석 그 자체다. 물론 대부분 우리 아파트에 사시던 분들이었겠지만, 나는 사실 몇 층에 몇 호에 사시는 분인지는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들인가? 그래도 나는 그들과 함께 잠시나마 즐거웠다. 늘 반갑게 웃으며 인사해 주시던 어른들. 내 기억 속 어른들은 분명 좋은(안전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