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아생전 우리 집 복순이는 큰아빠가 우리 집에 오시면 아빠인 줄 알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목소리부터 외모까지 정말 쌍둥이처럼 닮았다. 아빠와 두 살 터울인 큰아버지는 나에게는 아빠만큼이나 푸근한 존재였다. 할머니댁에 함께 살았던 것도 큰 영향이겠지만, 무엇보다 사촌 언니와 오빠들과 가까이서 친형제처럼 함께 컸던 환경이 컸을 거다. 서로의 집은 10분 거리,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와 행사가 많던 집에서 아이들은 늘 함께 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복잡한 집안의 장남이 바로 큰아버지였다. 큰아버지는 언제나 허허허 웃으며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든 어떤 것이든 거절하는 법이 없으셨다. (이전에 <영아아파트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큰 슈퍼를 운영하시던 분이 바로 이 큰아버지다.) 아빠는 가끔 나를 꾸짖곤 했지만, 큰아버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런 큰아버지가 좋아서 주변을 늘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 큰아버지는 괜히 심부름을 핑계로 용돈을 만들어 주셨다.
말보로 레드가 2500원 하던 시절, 큰아버지는 늘 3천 원을 건네어주시며 '빨간 담배 한 갑 사와라' 하셨다. 슈퍼 바로 옆건물에 붙어있는 담배가게는 지하에 오락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담배 심부름을 하고 나면 잔돈은 내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부리나케 뛰어가 담배를 사 온 나는 매번 남은 500원을 가지고 오락실로 내려갔다. 오락 한 판에 100 원하던 시절에 500원은 나에겐 충분한 돈이었다. 테트리스와 버블버블에 500원을 모두 기부하고 다시 계단을 올라 옆 건물인 큰아버지 슈퍼에서 먹고 싶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물고 슈퍼 옥상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보러 올라갔다. 언니 오빠들이 집에 없어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에겐 언니 방 안에 친구들이 써준 편지와 새로 산 샤프 등을 뒤적거리는 놀이도 남아있었으니까. 심심할 틈이 없던 나의 큰집. 나름 몰래 언니 방에서 놀았는데, 언니는 늘 내가 다녀간 것을 알았다고 했다.
큰아버지의 슈퍼 뒤쪽에는 닭장과 텃밭이 있었다. 식물을 돌보고 동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덕분에 나는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꺼내오고, 큰 개와 함께 뒷산으로 산책도 가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고양이도 좋아하셨는데, 큰아버지는 자주 주인 없는 고양이들에게 밥도 주셨다. 나비를 '냬비'라고 특유의 발음으로 부르셨는데, 큰아버지 목소리에 모든 고양이들이 마법에 홀린 듯 어디선가 달려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의 첫 대형견인 진돗개 갑자와 갑자가 낳은 갑순이도 역시 큰아버지의 개들이다. 대를 이어 키운 진돗개들은 정말 총명했다. 학교 가는 길에 우연히라도 만나면 쏜살같이 뛰어와 반겨주는데, 남들은 개가 작은 아이를 공격하는 줄 알고 다들 놀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반가워 다리를 올리는 일은 있어도, 단 한 번도 나에게 이빨을 보인 적도 없었다. 주인에 대한 진돗개의 충성심은 정말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인생에 따뜻하고 즐거운 추억 자양분을 뿌려주신 큰아버지.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고 했던가. 지난해 칠순 여행을 앞두고 자꾸만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밥맛이 없던 큰아버지는 여행 바로 전날 췌장암 말기 통보를 받고 그 길로 몇 달을 버티지 못하시고 긴 여행을 떠나셨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가족들의 충격은 더 컸고, 그 빈자리도 쉽게 채우지 못했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그냥 여행을 갈 걸 그랬어.." 하며 조금 더 건강해지면 다시 여행을 가자고 큰아버지를 설득했던 언니는 얼굴에 후회가 가득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언니는, 평생 우는 모습을 보인적이 없던 언니는 큰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언니를 보니 저절로 시상이 떠올라,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 당시에 시를 한 편 적어보았다. 유치하지만 이 시에는 나와 큰아버지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아직도 큰집에 가면 '왔니'하고 문 앞에서 우릴 맞이해 주실 것 같은 큰아버지. 점점 날이 따뜻해지니 곧 다가올 그의 일주기가 실감이 난다.
<큰아빠>
아빠인 줄 알았지
우리 집 복순이도 속은 목소리
냬비야 하고 부르던 그 목소리
아빠인 줄 알았지
내 친구들이 줄줄이 인사하던 그 모습
쌍둥이 같던 외모
아빠인 줄 알았지
스치듯 풍기는 담배향기
말보로 레드하나 사 오련
잔돈 오백 원에 오락실을 들락날락
심부름하던 그때가 좋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