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10년 만이네.
"정말 많이 변했다, 너."
그동안 많이 예뻐졌고, 조금은 낯설기도 해.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 보니, 내가 알던 너 맞네. 겉모습이 살짝 바뀌어서 걱정했는데, 넌 역시 감동이었어.
DAY.1
오랜만에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지만, 서울에서 휴게소를 딱 한 번 들리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도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더라. 황리단길 주변 첨성대와 대릉원을 너와 함께 걷고 싶어서 시내에 있는 한옥 호텔에 숙소를 잡았어. 숙소 주변이 모두 이름 모를 능들이라 뷰가 정말 이색적이더라. 그렇지?
저번에 같이 갔던 전주 한옥마을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규모도 훨씬 크고 게다가 걷는 족족 국가 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더라. 숙소에서 한 번 나가면 그 주변을 다 둘러보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들어올 수 있으니, 편한 신발은 필수야. 오랜만에 유적지를 보는 여행을 하니까 유럽여행 생각이 절로 나더라고. 진짜 많이 걸었지. 이 숙소를 선택 한 건 주변 유적들을 10분 안에 걸어서 갈 수 있어서였어. 그중 가장 가까운 곳이 대릉원이었잖아. 그 유명한 천마총이 있는 곳. 총은 무덤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부르는 이름이래. 누구의 무덤인지 알면 총이 아니라 릉이 붙지. 한마디로 천마총은 무덤 속에서 천마도가 나와서 이름을 붙인 이름 모를 높으신 분의 무덤이지. 그 옆에 엄청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에 미리 한 번 파보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무덤이라나. 암튼 대릉은 마치 산처럼 고분들이 아름답게 자리해 사진도 너무 잘 나오더라.
우리도 인생사진 찍었잖아. 진짜 예쁘지. 봄에도 또 가고 싶다. 그런데 겨우 대릉원 한 바퀴에 배가 출출하네. 대릉원에서 나오면 바로 황리단길로 이어져서 조금 다리가 아팠지만, 색다른 뷰에 걸을 힘이 솟아났지. 그런데 황리단길은 검색을 하면 전부 맛집이래. 그래서 어딜 가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더라. 가게들이 다 현대식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데이트하긴 좋은데 경주 느낌은 아니었어. 중간에 첨성대 떡갈비를 안 시켰으면 경주인지 몰랐을 거 같아. 음식은 전체적으로 단맛이 강해서 처음에는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다가 마지막엔 밥을 남겨버렸지 모야. 소화도 시킬 겸 첨성대를 들렀다가 동궁과 월지의 야경까지 둘러보니까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열시네. 씻고 맥주 한 캔 하고 누우니까 12시더라. 와 힘들다.
<Point>
황남관한옥호텔- 대릉원-첨성대-황리단길-동궁과 월지
DAY.2
너를 더 빨리 만나고 싶어 KTX를 타고 올까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차를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오늘은 박물관도 가고, 오후에는 보문단지로 숙소도 옮길 거거든. 우리 예전에 함께 갔었는데, 불국사말이야. 기억나?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이번에는 꼭 기억하게 해 줄게. 아침은 간단하게 순두부 어때? 경주는 맷돌 순두부가 유명하데. 한 번 맛볼까? 음.. 강릉도 초당순두부가 유명하잖아 거기보다는 입자가 조금 더 거칠어. 고소한 콩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달까? 이 가까이에 콩국집도 있는데 이따 거기도 가보자. 콩국에 도넛이 들어있다지 모야? 너무 신기하지. 맛이 상상이 안돼.
경주는 지붕이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데, 그 안에 국립 경주 박물관은 얼마나 엄선을 해서 유물들을 모아놨을까. 기대가 된다. 불교의 나라답게 다양한 불상들과 금으로 된 장신구들이 많네. 특이한 건 불상이 다른 지역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 있다는 거야. 부처님이 뭔가 화려해. 신라가 외국과 교역을 많이 했던 흔적을 유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더라. 당나라 의복을 입은 토우도 그렇고, 유리잔도 어쩜 요즘 쓰는 것과 닮아있고 말이지. 박물관 마당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옛날에 어떻게 이런 크기의 종을 만들 수 있었을까, 사뭇 대단하게 느껴지더라. 박물관만 걸었는데, 또 배가 고프지 모야.
아까 말했던 콩국을 먹으러 가볼까? 와~ 진짜 고소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두유의 진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거기에 달콤한 검은깨 도넛을 더해서 고소하면서도 달짝지근해. 간식으로 딱이다. 근데 어제 무리를 했는지, 아무리 봐도 불국사는 오늘 좀 힘들 것 같아. 내일로 미뤄도 되지? 오늘은 중앙시장에 치킨 유명한 집이 있다는데, 시장 구경 좀 하고 거기 가서 치킨 사서 얼른 숙소로 돌아가자. 어때?
<Point>
순두부집- 국립경주박물관-콩국집-중앙시장-보문단지이동
DAY.3
보문호는 봄에 벚꽃이 피면 그렇게 예쁘다던데.. 날씨 좋을 때 한 번 더 올까? 보문단지는 황룡사지 9층 목탑을 본떠 만든 건축물부터 경주 엑스포 대공원이랑 경주월드, 버드파크 등 진짜 24시간이 모자란 곳이네. 황리단길이 연인들을 위한 분위기였다면 보문단지는 조금 가족을 위한 느낌이야. 아이들과 오면 너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지. 일어나 숙소 근처 교리김밥에서 빠르게 아침을 해결하고 서둘러 불국사로 가야 해. 불국사는 여기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야. 어랏, 11시인데 정문이 벌써 만차야. 후문으로 가래.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걷다 보니 다 거기서 거기더라. 전에는 입장료를 내고 갔던 것 같은데, 이제는 없어졌네? 대웅전이 수리 중이구나.
조금 아쉽다. 어릴 적에 와보고 어른이 돼서도 한 번 더 와봤는데, 사진으로 방송으로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익숙해. 그렇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니까 이 절의 규모가 새롭게 와닿아. 제법 많은 절을 가봤지만 불국사처럼 웅장하고 또 화려한 절은 못 본 것 같아. 특히 탑의 크기가 말도 안 돼. 십 원짜리 동전에서 봐서 막연하게 뭐 조금 크겠지 생각했으나, 진짜 크다. 그리고 이렇게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탑도 보지 못한 것 같아. 세월을 그대로 담은 대웅전의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함과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는 돼지도 귀엽고. 약수도 마치 정수기 물을 먹는 것 같은 깔끔함이 있어. 그리고 계단이 특히 많은데, 단의 높이가 꽤 있어서 오르고 내릴 때 조심해야 해. 이쯤 되니까 누가 왜 불국사를 지었는지 궁금해졌어. 불국사는 8세기 중후반 김대성이라는 재상이 지었는데, 석굴암을 먼저 짓고 그 후에 불국사를 지었데. 김대성에 관한 설화가 있는데, 이건 너무 긴 이야기라, 찾아보길 바라. 석굴암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불교 양식의 인공 석굴이래. 아쉽게도 내부 촬영은 어려웠는데,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 참 걸어 또 계단을 올라 힘겹게 올라간 곳에서 만난 정말 큰 부처님은 아니 여기에 어떻게 누가 이 크기를 이라는 물음을 갖게 하지. 석굴암은 특히 부처님이 바라보시는 동해바다 뷰가 기가 막혔지. 여기서 일출을 보고 싶다고 했지? 내가 한 번 알아볼게. 기회가 된다면 같이 보자. 이미 만보 넘게 걸었지만, 숙소 가는 길에 있는 동리목월 문학관에서 잠시 들러가는 건 어때? 나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를 좋아하거든.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근데 이번에 알았잖아. 얼룩송아지도 박목월 시인이 지은 거라는 거. 그 동요 말이야. '엄마 닮았네'로 끝나는 거. 신기하지? 평생 모르고 살 뻔했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만찬은 경주 물회 어때? 경주는 한우가 유명해서 구워 먹어도 맛있고, 회로 먹어도 맛있다고 하네? 고생했으니 고기 먹어야지.
<Point>
교리김밥보문점-불국사-석굴암-동리목월문학관-보문뜰(함양집재료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