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L'étranger, 이방인이라고 불리는 이 프랑스어 단어. 사전으로 검색해 보면 외국인을 뜻하는 단어라 검색이 나온다. 옛날에는 외국인을 이방인이라 불렀단다. 같은 뜻을 지닌 단어라고 해도, 파란 눈의 외국인과 노란 머리 이방인의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이방인'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부정적인 시선이 한 방울 들어간 느낌이랄까.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라고 하면 다시 한번 혹시 제목에 다른 의미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 명작의 힘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고전소설은 어렵고 따분하다. 그러나 매번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른 것은 어찌 설명할 수 없는 고전만의 매력이 아닐까.
<이방인> 소설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재미있게도 책을 끝까지 모두 읽고 다시 첫 문장을 읽으니,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통념상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여기에서부터 이상함(?)을 감지했어야 했다. 양로원으로부터 받은 전보 한 통. 내일이 장례식이라는 전보의 내용에 주인공 뫼르소는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시간을 계산한다.
"나는 내일 2시에 버스를 탈 거고, 여기서부터 80km 떨어진 곳이니 오후에는 도착할 것이다. 장례식을 지켜볼 수 있을 테고 내일 밤이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막힌 남자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회사 대표에게는 이틀의 휴가를 내며 (휴가를 내는 것이) "제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지? 그러나 점입가경으로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 늦잠을 잘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행복해 보이는 뫼르소(주인공)이었다. 집으로 온 뒤에도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을 맞이하며 수영도 가고 여자도 만나고..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이런 그의 일상은 그의 생각에 잘 나타나있다."엄마는 이제 땅곳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건, 그가 엄마를 싫어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 묻는 여자친구에게, 나는 상관없으니 네가 원하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남자친구가 몇이나 될까? 또한 본인을 사랑하는지 묻는 여자에게, 어떤 의미도 없지만 아마 사랑하는 거서 같지는 않다고 대답하는 이 남자, 심각하다.
어느 일요일 그들은 수영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향했다. 진짜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함께 간 레몽이란 친구가 아랍인들과 다투다가 그들의 칼에 맞고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뫼르로(주인공)는 다시 공격해 올 지도 모를 그들에 맞서기 위해 친구에게 총을 넘겨받게 되었고, 다시 맞닥뜨리자 네 번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은 것이었다."
살짝 지루할 뻔했던 스토리에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당연히 그를 심문했고, 심문하는 과정에서 자기 방어를 위한 사건의 초점이 흐려지고, 살짝 맛이 간 그의 정신세계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시작은 왜 땅에 엎어진 시체에 총을 여러 발 발사했는지였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총을 더 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서다. 그는 딱히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만다. 감옥에서의 삶은 그에게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그저 더웠고, 답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법정에서는 의외의 진술들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배심원으로 있던 관리인(엄마의 양로원)이 바로 그였다. 그는 주인공이 관을 열어서 엄마를 볼 것이냐는 말에 보지 않겠다고 했던 것, 담배를 피웠던 것, 잠을 잔 것, 밀크 커피를 마신 것 등 엄마의 장례식에서 일어난 일련의 이야기를 했다. 또한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게 사회적 통념상 극악 무도한 범죄자가 되어버린 그의 사형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나 또한 극악무도한 엄마였던 적이 있다(아마 지금도 그럴지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성함을 모르고, 언제 학교가 대체 휴일인지 미리 알지 못하며, 자주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는 엄마는 사회적 통념상 좋은 엄마는 아니니까. 회사에서는 아이 때문에 주말 출장이 어렵고, 철야가 어려운 그런 회사원이었고. 아이에게는 아침에 잠깐, 잠자기 전에 잠깐 만나는 극악무도한 엄마였겠지. 어느 순간부터 모두에게 미안하기만 한 이 상황을 미안하지 않기로 했다. 나름대로 중간의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방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원주민인가? 뭐, 아무렴 어떠나, 우리 모두가 어느 자리에서든 조금만 비틀어보면 이방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