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아파트

서울시 동작구 사당 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다섯 번째 이야기

by 기억 저장중

요즘은 담을 허물고 그곳에 나무나 풀을 심거나, 주택이라면 주차장을 만들겠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사방이 넘어야 할 담 천지였다. 특히 우리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담들 과 철창들. 그러나 사람들은 철장을 옆으로 치우고 담 넘을 구멍을 만들었고, 지름길처럼 그렇게 나는 담을 매일 넘어 다녔다. 특히 엄마 손을 떠나 학교를 가거나 학원을 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집에서 나와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철망이 한쪽으로 치워진 담장이었으니까. 그 담장을 넘어야 나는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세상으로 나가는 나의 지름길은 까딱하면 가시 철창에 찔릴 수도 까딱하면 뛰어내리다가 치마가 걸려 뒤가 부욱하고 찢어질 수도 있는 험난한 곳이었지만, 나는 돌아가기보단 위험을 무릅쓰고 빨리 가고 싶은 성격 급한 아이였다.

때로는 정말 담장을 다 넘었다고 생각해서 점프를 뛰다가 철망에 치마가 걸려 찢어진 적도 있었고, 너무 많은 이들이 이용하다 보니, 철조망이 업그레이드되어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담장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원래는 이곳에 멀쩡한 후문이 있다. 그런데 이 후문에는 경비실이 없어 아무나 누구나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일들이 많아져 폐쇄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좀도둑도 많았다) 그래서 이 후문을 이용하던 누군가가 그 옆으로 이어진 담장 위 철조망을 치우고 담을 넘기 시작했고, 모두 그 선구자를 따랐다. (사실 우리 가족 모두가 여길 이용 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담을 기가 막히게 넘는다. 치마를 입고도 문제없다. 학창 시절까지 치면 약 10여 년간 아파트 담을 넘었으니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담은 언덕 위로 이어지며 아파트를 한 바퀴 감싸고 있는데, 총 3군데 정도 내가 잘 이용하던 나만의 지름길이 있었다. 첫 번째 학교로 가는 길- 후문 옆 담장. 두 번째, 학원을 가는 길- 후문을 따라 언덕 위. 세 번째 서예학원을 가던 길- 아파트 뒤편 담장(특: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님) 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두 번째 담장인 학원 가는 길은 살짝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내 키보다 높은 담장을 기어 올라가 담을 넘어야 했기 그 스릴이 잊히지 않는다. 또한 담장이 나무 뒤에 숨어있어 정말 찐 아파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곳이었기에 더욱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서예학원 가는 길에 있는 담장은 사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 있어, 담을 넘을 때마다 살짝 창피함을 느꼈다. 솔직히 사람이 지나가지 않기를 기다렸다가 담을 넘어갔던 적도 많았다. 담을 넘는다는 것이 올바른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이 지름길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했다. 매일 담을 넘어가 서예학원에서 서예를 하던 학생이란. 너무나 이중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담장을 넘기 위해 건너가야 했던 풀 숲에 우거진 강아지풀과 네 잎클로버, 나팔꽃 덩굴들. 때때로 마주치는 도둑고양이는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오늘 우리 아파트에는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하겠다는 프린트 물이 우체통에 꽂혀있었다. 이유는 정문과 후문에 키를 터치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거대한 자동문을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옛날 철조망 담장은 무서워 보여도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철조망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누구를 다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문을 놔두고 자꾸 지름길을 찾아가니, 그걸 저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파트가 설치하겠다고 하는 자동문은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나 그 속은 더욱 냉정하고 철저하다. 키가 없다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동 호수를 외우지 못하면 친구집 벨도 누를 수가 없으니까. 이런 세상에 살다 보니 더욱 그립다. 아빠가 넘고 기다리면, 엄마가 넘고 이어서 동생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내가 넘어가던 그날 그 밤의 그 담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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