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아파트

서울 동작구 사당 3동 영아 아파트 5동 705호 여섯 번째 이야기

by 기억 저장중

우리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두 개 있었다. 5동과 3동 사이 그리고 1동과 2동 사이. 그런데 그 놀이터보다 내가 더 자주 찾던 '놀이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폐가전부터 침대 매트리스, 냄비, 장난감 등 모든 가져다 놓으면 고물상에서 실어가는 노인정 옆 공터다. 멀리서 보면 쓰레기장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제까지만 해도 집에서 잘~ 쓰던 물건들은 두고 간 곳이니, 비만 오지 않으면 물건들의 상태는 꽤 괜찮았다. 우리는 엄마 아빠 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노인정 옆 공터에 우리만의 왕국을 지었다. 신기하게도 그 공간은 매일매일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졌다. 특히 침대 매트리스가 많이 나왔는데, 그럴 때면 방방이 대신 신나게 점프를 하며 놀았다. 모르긴 몰라도 침대에서 마음껏 뛰어도 엄마에게 혼나지 않는 것이 제일이었다. 소파 위를 신발을 신고 깡충깡충 뛰어가고 집안에 있어 손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마음껏 만지고 던졌다.

그곳은 늘 1동 아파트에 가려 응달이었는데, 여름에 특히 놀이터가 더울 때 단골로 찾아갔다. 그 시절 놀이터에는 모래가 깔려 있어, 해가 쨍쨍한 여름에는 모래를 밟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뜨겁게 모래가 달궈져 있었다. 때문에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이 찾는 곳이 바로 그 공터였던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는 노인정도 코 앞이라 아이들이 심하게 떠들면 나와서 다른 데 가서 놀라고 역정을 내시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고 놀이터가 심심해질 때면 제비 떼처럼 다시 돌아왔다. 언제는 우리 집 가구도 그곳에 내어졌는데, 오랫동안 집에 있던 가구가 밖에 버려진 것을 보니 애틋한 마음에 더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요즘은 가구들도 가격이 싸고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엄마가 결혼할 때 가져온 혼수가구들이 많았다. 집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찬장, 장롱은 아파트가 재개발이 확정되고 우리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신혼 때 가구를 쉬이 들이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이 몇 달 동안 엄마가 준 교자상을 펴고 밥을 먹었다. 그런 나를 본 엄마가 보다 못해 밥통과 전자레인지도 수납이 가능한 아일랜드 바 형태 식탁을 사주셨다.

하는 수 없이 받았지만, 내 계획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오랫동안 함께할 가구를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었는데... 엄마는 당장 살림살이가 없는 내가 부족해 보였나 보다.

엄마가 사준 2인용 식탁은 아이가 태어나며 당근 마켓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그 후 나는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 기념으로 구경을 갔다가 만난 신박한 접이식 식탁을 여태껏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상판이 물에 젖어 이음세 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페인트도 까져 손님 초대가 민망해진 지 오래. 고민 고민 끝에 드디어 이 집에 맞는 식탁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4월 첫째 주에 도착하는 새 식탁을 기다리며, 먼저 떠난, 그 공터에 남겨졌던 오랜 친구를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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