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아파트

서울시 동작구 사당 3동 영아아파트 5동 705호의 아홉 번째 이야기

by 기억 저장중

나는 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일단 여름의 냄새가 좋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계절을 확인하곤 했다. 냄새로 말이다. 이상하게 복도 창문으로 아파트를 내다보며 숨을 들이마시면 계절별로 그 냄새가 달랐다. 특히 여름의 냄새는 들이마시는 순간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함이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은 해도 길어 친구들도 늦게 집에 들어가서 많이 놀 수 있어 더 좋았다. 근데 진짜 좋았던 건 따로 있다. 저녁밥을 먹고 엄마와 동생과 돗자리를 들고 더위를 식히러 놀이터 언덕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에어컨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에어컨을 틀면 전기료 폭탄을 맞을 때라 다들 저녁 먹고 아파트 놀이터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여름밤바람을 맞았다. 누구는 수박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누구는 보리차를 들고 나와 서로 나눠 먹고 누웠다 앉았다 하며 여름 낭만을 즐겼다.


아파트에 살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시골 어느 마을 못지않는 이웃사촌들을 만났고, 추억을 만들었다. 시냇가가 없으면 아파트 수도꼭지가 대신해 줬고, 물총놀이를 하고 물풍선을 던져도 혼내는 어른 하나 없었다. 여름밤, 아스팔트에 떨어져 익어가는 송충이를 나무에 올려주고 돗자리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엄마 무릎에 머리를 기대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동생은? 모르겠는데. 분명 같이 나갔는데,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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