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네의 택시 운전사

20260123(D+17)_베트남/무이네

by 박대희

무이네는 냐짱에서 5시간이다. 거리 상으로는 그 정도 걸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버스는 중간중간 계속 정차해서 누군가를 태우고 무언가를 싣는다. 도대체 승객을 태운 고속버스가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그들의 법칙이니 지나가는 나그네가 관여할 할 일이 아니다. 오늘 아쉬웠던 건 내가 묵을 숙소가 정확하게 구글맵에 표시되지 않았고 덕분에 호텔 앞에 내려준다는 버스 회사의 호의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선을 다해 설명은 했지만 기사 아저씨나 표를 건네주던 아주머니 모두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불안해서 계속 지켜보던 구글맵의 내 위치는 속절없이 우리의 호텔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20여분을 더 달린 후에 우리는 호텔에서 20km나 떨어진 곳에서 그 커다란 짐들과 함께 내려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내린 곳은 숙소보다는 우리가 둘러봐야 할 곳들에 가까웠다. 무이네는 크지 않은 도시 같지만 또 막상 볼거리는 여기저기 뚝뚝 떨어져 있는 듯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는 오늘 볼거리들을 먼저 보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단한 용기였다. 모든 일정을 그 엄청난 짐과 함께 해야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숙소를 오가는 택시비를 아꼈지만 귀찮은 일들도 많았다. 처음으로 들른 요정의 샘은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친절을 베풀어 짐을 맡기고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일몰을 보러 붉은 사구에 올라가기 전에 들른 카페에서는 가차 없이 거절당했다. 일부러 음료까지 마시며 부탁을 했는데 그렇게 되고 나니 약도 오르고 화도 났다. 하지만 그건 우리 사정이고 거절하는 것도 그들의 권리이니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덕분에 우리는 한발 디디면 반발은 밀리는 모래 언덕 중턱까지 그 짐을 지고 날라야 했다. 도저히 사구 끝까지 들고 올라갈 수는 없어 귀중품만 제외하고 중턱 어느 나무 밑에 두었는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 짐이 안전한지 신경 쓰여 혼났다.


요정의 샘에서 붉은 사구를 향해 갈 때의 일이다. 우리를 옮겨 주실 기사 아저씨가 도착하셨고 여느 때처럼 택시에 올라탔다. 탑승 이후에 조금 달랐던 건 아저씨께서 계속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셨다는 점이다. 늘 그렇듯 어디에서 왔냐부터 시작되었는데 대화는 끊이지 않고 15분간 계속되었다. 그는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무이네는 외국인들이 많이 온단다. 그래서 당신이 영어를 공부하면 택시 운전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셔서 여쭈었는데 올해로 61세가 되셨고 앞으로 4년 더 열심히 한 후에 은퇴하실 생각이라 하셨다. 4년 후는 택시 라이선스가 소멸되어 더 할 수 없단다. 너네 나라는 어떻냐는데 그건 정말 몰라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환갑의 나이에 열심히 혼자 공부하신 기사님과 초중고 12년도 모자라 대학에서까지 영어를 공부하고 캐나다에 1년 어학연수도 다녀온 이의 영어 실력은 비슷했다. 누구도 빠르지 않았고 누구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말을 천천히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대화는 편했고 빨리 대답해야 된다는 조바심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영어가 훌륭하다며 정말 영어가 훌륭한 이가 들으면 배꼽을 잡을 이야기들로 서로를 격려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 시작 보름 만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사람과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대화는 또 늘 그렇듯 김치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우리는 붉은 사구 언덕에서 내렸고 나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주신 택시 기사 아저씨는 또 어떤 외국인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떠나가셨다. 아직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아들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둘의 대화를 대부분 알아들었다며 본인의 영어가 많이 는 거 같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냉정하게 얘기해 줬다. 그건 그 아저씨와 아빠의 영어가 네가 알아들을 수준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네가 영어를 알아들은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기사 아저씨가, 너에게는 할아버지 뻘이 되는 그분이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일러주었다.


택시는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무기로 더 많은 이윤을 취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저 불특정 다수에게 선택되는 직업인데 그럼에도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장인 정신에 가깝다. 그것도 혈기왕성한 젊은 시기가 아니고 은퇴를 앞둔 시기라면 더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여행을 다니다 만나는 사람들 중 가끔 전율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일상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조금 더 충격이 크게 오는 건 낯선 환경 탓인 듯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여행에서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 중 하나다. 그런 사람을 되도록 많이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래서 삶에 대한 태도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하는 것. 내가 원한다고 훌륭한 이들을 많이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운이 따른다면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 아빠가 백 번 말하고, 책에서 백 번 읽는 것보다 '무이네의 택시 운전사' 같은 분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큰 공부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