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행운

20260124(D+18)_베트남/호찌민

by 박대희

어린 시절 단독 주택에서 살던 나에게 집 앞 골목길은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해 질 녘까지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곤 했는데 담장 너머 공이 날아가는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이벤트였다. 그럴 때면 가끔은 담을 넘어 공을 찾아왔고 난도가 높은 집이면 벨을 눌러 공을 꺼내달라 부탁해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이 남의 집 담장을 넘어서 우리는 벨을 눌러 공을 꺼내 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한 여성 분이 속옷 차림으로 나오셔서 공을 꺼내 주시는 것 아닌가. 아마도 아이들이니 별 신경을 안 쓰신 모양이다. 공을 받아 들고 돌아서는데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이건 '뜻밖의 행운'이라고. 우리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던 것 같다.


오늘은 몇 가지 행운이 겹치는 날이었다. 일단 무이네에서 출발한 버스가 우리 호텔로부터 300m 떨어진 곳에 승객들을 내렸다. 이건 거의 횡재에 가깝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여러 차례 버스를 탔지만 한 번도 이 정도로 숙소에 붙여서 내려준 적이 없다. 베트남 버스는 우리나라의 남부터미널이나 고속터미널처럼 확실한 곳에 서지 않는다. 그들만의 법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행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냥 오라는데 가서 서 있어야 하고 내려주는데 내려야 한다. 어떤 때는 주유소였고 오늘은 카페 앞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거리 어느 곳으로 오라 해서 여기가 맞나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려야 했던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통 호텔까지는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고 움직이는데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수고를 던 것이다. 이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가.


게다가 내리자마자 장기 여행의 대선배를 만났다. 그분들은 우리가 내린 버스를 타고 무이네로 향할 계획이었고 우리는 무이네에서 막 도착한 참이었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먼저 알아보신 그분들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셨다. 당신들은 4년째 여행 중이고 120여 개국을 여행하셨다 한다. 그분들 입장에서 우리야 이제 20일 가까이 되어가는 햇병아리지만 어린 친구가 아빠 따라 고생하는 게 대견해 보이셨나 보다. 비슷한 경험을 먼저 한 분들을 만나면 괜히 힘이 솟는다. 뭐랄까, 이게 그저 허황된 계획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가 먼저 증명한 느낌이랄까. 아들은 그런 분들의 격려 한마디에 한껏 고무된다. 어른도 칭찬에 약하기는 매한가지지만 아이들은 그 효과가 폭발적이다. 매일 옆에 있는 아빠의 격려도 좋지만 계획에 없이 만나는 누군가의 칭찬은 아들을 춤추게 하기 마련이다. 요 며칠 힘든 일정에 지쳐서 숙소에서 쉬고 싶어 하던 아들은 어떤 기운을 받았는지 호찌민을 둘러보자는 이야기에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마지막 행운도 예상치 않은 시점에 찾아왔다. 우리는 호찌민의 이곳저곳을 돌아본 후 저녁을 먹고 여행자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여행자 거리, 이름만 들어서는 실로 건전하지 않은가. 초입까지는 그랬다. 워킹 스트릿이니 차가 사라져 걷기 편했고 외국인의 비중이 현저히 높아지면서 흥이 넘쳤다. 여기까지가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여행자 거리였다. 그런데 조명도, 음악도 점점 화려해지더니 길 양측으로 작은 옷을 입은 여성분들이 현란한 춤사위를 펼치시는 것 아닌가. 내 옆에는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함께 걷고 있었고 나는 이 마지막 행운이, 마치 나에게는 행운이 아니라는 듯 보이기 위해 애썼다. 시끄러우니 빨리 빠져나가자며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내뿜으면서.


그렇게 여행자 거리를 빠져나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이 마지막 행운은 나에게만 마지막 행운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속옷 차림의 여성 분이 공을 꺼내주시던 그즈음의 내가, 지금의 아들 나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기는 내가 올 곳은 아닌 것 같다던 아들의 말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정답을 알 수는 없다. 묻는다고 아들이 진실을 얘기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이 마지막 행운은 꼭 나만의 행운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면 아들도 이제 알 건 다 아는 나이가 된 듯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