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밤

20260112(D+6)_베트남/하노이

by 박대희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 주변에 '하노이의 아침'이라는 베트남 레스토랑이 있었다. 인근 식당에 비해 저렴한 음식 값은 아니었지만 맛과 분위기가 좋아 특별한 점심을 먹어야 할 때, 그러니까 법인 카드로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이면 종종 찾곤 했었다. 하노이에 대한 막연한 심상이 그려진 건 그때였던 것 같다. 한 번도 발을 디딘 적 없는 곳이지만 내 상상 속의 하노이는 조용하고, 우아하며, 싱그러울 것 같았다. 특별한 날 식사를 하던 그 식당처럼 말이다.


하노이에 내린 건 오후 6시가 넘어서였다. 입국 수속을 하는 직원의 불친절은 그러려니 했다. 그건 비단 베트남의 문제는 아니니까. 하노이에 대한 나의 심상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시내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서부터였다. 대만에서의 일주일 내내 신봉하던 구글맵은 우리가 버스를 갈아타는 곳까지 50분이 걸린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하노이의 버스는 AI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광속 질주를 시작했다. 당황한 AI는 도착시각을 점점 줄여갔고 결국 20분 가까이 이동 시간을 줄이고 나서야 휴식에 들어갔다. 하노이의 밤은 '하노이의 아침'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긴 이동으로 우리는 배가 고팠고 숙소에 빨리 데려다준다면 근처 식당에라도 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부터 벌어진 일은 단순한 과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항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갈아타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10분의 배차간격이라던 이 버스는 3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20분은 내 머릿속에서 '하노이의 아침'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차들은 안전거리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서로서로 연결된 기차 수준으로 움직였고 중앙선 너머의 차가 달려오고 있음에도 과감한 좌회전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자동차만 다니는 도로라면 어떻게 견뎌볼 만했을 것이다. 하노이의 도로에는 절반이 오토바이였는데 바퀴가 두 개인 주제에 절대 네 개 달린 자동차에 지려 하지 않았다. 자동차는 겁도 없이 까부는 오토바이를 향해 연신 하이빔을 쏘아댔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이 모든 혼란이 시끄러운 경적 소리, 매캐한 매연과 함께 했고 그도 모자라 사람들의 무단횡단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짐을 푼 내 머릿속에 '하노이의 아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노이의 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제 갓 하루 된 하노이의 풋내기가 그들이 숨겨놓은 고도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대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하노이의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가 상상했던 조용하고 싱그러운 하노이가 찾아올까. 옅은 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들어보려는데 아직도 밖에서는 젊은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현재 시각 새벽 1시, 적어도 지금까지 '하노이의 아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