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 부른 돼지

20260113(D+7)_베트남/하노이

by 박대희

내가 학교 다닐 적에는 수련회라는 것이 있었다. 수학여행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 그대로 수련회는 적당한 '육체 수련이 동반'되었다. 수련회가 시작되면 학교 선생님들은 멀찌감치 물러나셨다. 그리고 꽤 무섭게 생긴, 불필요할 정도로 중저음을 내뿜으시는 교관 선생님들이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등장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 그분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내뱉으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율법 같이 느껴졌다. 그분들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높은 단에 올라서서 하신 말씀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기만 하면 됩니다."


놀라울 정도로 간명한 이 명제는 나의 모든 여행에서 진실로 확인되었다. 저 세 가지가 수월했던 여행치고 괴로웠던 여행은 없는 것 같다. 1년여의 긴 여행도 저 세 가지 원칙만 무너트리지 않는다면 어려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아들은 앞서 말한 원칙들을 잘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너무' 잘 수행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번 여행이 내가 준비한 것들과 조금씩 엇나가고 있는 부분도 그중 하나 때문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예산이다. 2명이 1년을 여행한다는 것 자체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 회사까지 그만둔 마당에 여유 있는 예산 운영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상세한 예산 계획을 수립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여행 일정도 긴 데다가 나라마다 다른 물가며, 수시로 바뀌는 환율까지 무엇하나 마음 같은 것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 평균 예산을 상정하고 여행 일수를 곱하는 것으로 연간 예산 계획을 잡았다. 동남아나 남미에서 아낀 돈으로 유럽과 북미의 비싼 물가를 보완해 보자는 것이 계획 수립 당시 나의 의지였고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제 갓 일주일을 넘긴 시점에 예산에 대한 나의 의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너무 잘 먹는 성장기의 아들'이다. 계획 대로라면 지금은 내가 정한 평균 예산을 밑돌아야 하건만 놀라울 정도로 평균치에 수렴하고 있다. 이는 추후 물가가 비싼 동네에 갔을 때 우리에게 여유가 없어진다는 의미라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다.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여행 다니면서 그러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당연히 식비는 절약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세끼를 챙기지 못하는 대신 세끼에 먹을 것을 두 끼에 몰아 먹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세끼에 먹을 양 보다 더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택시 탈 것을 버스 타서 줄이고, 호텔 갈 것을 호스텔에서 줄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줄인 돈으로 그는 먹고 또 먹는다.


하노이 시티 투어는 쉽지 않았다. 엉망진창 교통 상황은 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교통량이 많아지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하루 종일 들이마신 매연 때문인지 눈도 따갑고 코도 매큼했다. 고생 덕분인지 아들은 오늘 또 잔뜩 먹어 젖혔다. 오늘은 '배 부른 돼지가 배 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낫다'는 이상한 격언까지 외치며 음식에 집중했다. 그는 정녕 돼지란 말인가. 음식에 대한 아이의 멈출 줄 모르던 갈망은 기찻길 카페에서 수박 스무디를 들이켜고 나서야 끝이 났다. 우리가 기찻길 카페에 앉아 지나가던 기차를 구경한 건 밤 9시가 넘어서였고 그건 우리 일정의 끝을 의미했다.


어릴 적 교관 선생님이 아들을 본다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관 선생님도 아이와 여행 중이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내일은 또 얼마를 먹을지 모른다. 아빠 된 입장에서 잘 먹는 아들을 막아 세울 방법도 없다. 아이의 성장과 여행 예산 사이에서 번뇌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가. 소크라테스가 살아 있었다면, 그가 그의 아들과 여행하고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