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7(D+11)_베트남/다낭
나에게 다낭은 그저 좋은 휴양지로 여겨졌다. 내가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다낭 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은 모두 멋진 바다와 편안한 휴식을 이야기했었다. 때문에 후에에서 다낭으로 넘어오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도착하는 날은 그저 강가나 바닷가를 거닐며 빈둥거리다가 다음 날 바나힐 정도 들러주면 다낭은 잘 구경한 거겠거니 생각했었다. 큰 짐을 짊어지고 하루가 멀다 하며 잠자리를 바꾸는 우리에게 지인들이 얘기한 '좋은 휴양지'로서의 다낭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여행에서는 때때로 생각지 못한 보물 같은 장소를 만나곤 한다. 그럴 때면 마음 단단히 먹고 기대했던 어떤 것을 접했을 때 보다 더 신이 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오늘 다낭이 그러했고, 다낭에서 만난 오행산이 그러했다. 오행산은 5개의 대리석 산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졌다. 각각의 봉우리에 금, 목, 수, 화, 토 동양철학에서 이야기하는 5가지 성질을 부여하여 오행산이라 부른다 한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접근하면 조금 어렵고 사실 영어 이름이 더 직관적인데 이름하여 마블산이다. 아주 간단히 대리석 산이라는 이야기다.
이름의 심오함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오행산은 매력적이다. 그리 높지 않은 높이에 올라서면(오르기 힘든 분들을 위한 엘리베이터까지 마련되어 있다. 비록 소정의 이용료를 받지만) 여기저기 뚫린 길로 6개의 동굴과 사원, 탑들이 퍼져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동굴이 등장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불상이 방문객을 맞기도 한다. 동굴을 지나 높이 오르다 보면 전망대에 이르기도 하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도, 또 반대 편의 강도 모두 절경이다. 이러니 어찌 오행산에 대한 칭찬을 멈출 수 있겠는가.
6개의 동굴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암푸 동굴이다.(이렇게 읽고 쓰는 게 맞는지 확실치 않다.) 이 동굴은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는데 아래는 지옥, 위로 올라갈수록 천국에 닿는 느낌이다. 중앙 홀을 기준으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도깨비에게 고문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구현 방법이 다소 조악하지만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아주 좁고 가파른, 가파르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돌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야 하는데 경사도 경사인 데다가 계단 표면이 매끄러워(이곳은 마블산이다.)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겨우 그 끝에 올라서서 동굴 밖으로 나오면 뻥 뚫린 전망과 더불어 성스러워 보이는 탑과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이 험한 길의 끝, 그러니까 거의 밖으로 빠져나가기 직전의 동굴 벽에 '선복천년'이라는 글자가 빨갛게 새겨져 있다. 나에게는 '착하면 복이 천년 간다'는 얘기로 읽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넘어질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선복천년'은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내용이었다. 과연 착한 이에게 복이 천년이 이어질까. 기껏해야 백 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못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도 많이 봤고 착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너무 많이 겪었다. 그럴 때마다 선을 권하는 이야기들이 과연 진실일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복을 받는 기간을 천년까지 늘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내세가 있다면 죽어서 복을 받을 테고, 또 내세가 없다면 자손들이 받을 테니 착한 일을 하고 당장 복을 받지 못해도 조금은 본전 생각이 덜 날듯 하다.
'선복천년'이라는 글자를 보기까지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상당히 험한 길을 올라야 한다. 그렇게 힘든 길을 걷고 나서야 그 글귀를 볼 수 있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선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오히려 악에 빠지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당장 복이 오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착한 삶을 유지하려 한다. 아들에게 아빠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남사스러운 마음에 물을 수 없었지만 '선복천년'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의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아빠는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아이에게 복이 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빠는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이 세상 아빠들은 그냥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