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의 유전에 관하여

20260118(D+12)_베트남/다낭

by 박대희

여수는 여행객들에게 많은 매력이 있는 도시다. 여러 가지 즐길거리 중 야경을 보며 즐기는 케이블카도 매력을 더하는데 한몫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불과 몇 년 전이다. 가족과 함께 여수에 들렀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자 하는 아내의 강한 의지에 이끌려 해상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향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밖에 나오면(집에서도 다를 바 없지만) 아내의 입김이 더 강한 경우가 많다. 마침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인력으로 하지 못하는 설득을 자연에 기대어 해결해보려 했다. 내심 운영이 중단되었기를 바라며 매표소 직원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분은 야속하게도 석장의 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더 이상 빠져나갈 방법이 없던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케이블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케이블카는 덜덜 거리는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어느새 바다 위에 둥실 떠오른 형국이 되었다. 처음 몇 분은 괜찮았다. 그런데 탑승 시간이 길어지고 정류장에서 멀어질수록 케이블카는 바람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고 나는 아버지로서 두려운 마음을 표출할 수 없기에 그저 마음만 조리고 있었다. 세찬 비까지 내려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결국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대성통곡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놀리며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담았지만 당시 내가 누굴 놀릴 상황은 분명히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많이 울어라, 더 울어라. 너희 엄마가 다시는 이런 거 타자하지 못하게 울고 또 울어라'


아들의 울음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는지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 덕을 본 셈이다. 그리고 다낭을 여행하고 있는 오늘, 아들과 나는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혔다. 바나힐이 그것이다. '다낭을 지나쳐 갔다면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손가락이 들고 있는 다리 위에 올라가서 사진은 한 번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보다 더 걱정은 바로 바나힐까지 오르는 방법이었다. 바나힐이 자리 잡은 곳은 자그마치 해발 1,500m. 케이블카 탑승 시간만 30분에 달한다.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나의 결정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아들이었다.


그새 몇 년 컸다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친구들과 에버랜드 몇 번 다녀왔다고 여기까지 왔으면 한 번 들러야 한다며 나의 결심을 촉구했다. 여수에서 아내에게 그랬듯 이번에는 아들에게 이끌려 바나힐로 향했다. 케이블카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 벌써 컸다고 케이블카는 우습구나. 아빠보다 낫네'


하지만 대견했던 모습도 잠시, 케이블카가 지상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는 한껏 얼어붙은 그의 어깨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저 폼을 잡았을 뿐 아직 고소공포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보였다. 말수가 급격히 늘면서 긴장하고 있음을 시청각적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여수와 달라진 점은 그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정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건 그도 역시 사회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건 도착지가 다 되어서였다.


감정이 미묘했다. 아들만은 고소공포증에서 자유롭길 바랐지만, 또 막상 그도 고소공포증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유전적 동질감에서 오는 유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왔다. 어차피 유전이라면 엄마를 닮았어도 좋았을 텐데, 좋지 않은 건 또 아빠를 닮았다. 내려오는 케이블카에는 서양의 한 가족이 함께 탔다. 부모와 아들이었는데 아이는 잘해야 서너 살 되어 보였다. 그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케이블카 의자에 깊숙이 앉아 편안한 자세로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 역시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는데 여기에도 역시 유전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다시 나의 아들을 봤고 그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