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기복

20260119(D+13)_베트남/호이안

by 박대희

하루 안에 벌어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을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우선은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가는 버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다낭에서 호이안은 멀지 않은 거리다. 택시로 가도 2만 원이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우리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11시 반 다낭 출발 버스표를 예매했는데 출발 전날 저녁 10시 반까지 탑승 장소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 표는 11시 반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여행객이 무슨 힘이 있는가. 우선은 오라는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버스가 도착한 시각은 11시. 그것도 수차례 문자를 날리고 통화를 한 후에 버스가 들어왔고 기사 아저씨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구매한 표에 적힌 시간대로 11시 반에 나왔으면 난 그 버스를 놓쳤다는 것이다. 버스 출발 시각은 11시 20분이었다.


베트남에서 여러 번 버스를 탔지만 이 버스는 재미있었다. 타기 전에 신발을 벗는다.(이후에 타는 모든 장거리 버스는 늘 신발을 벗었지만 이때만 해도 신발 벗는 버스는 처음이었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신발을 벗어 나눠주는 신발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타자마자 알았다. 왜 신발까지 벗으라고 했는지. 버스는 지금까지 우리가 묵은 어떤 숙소보다도 깨끗했고 심지어 의자는 안마 기능이 있었다. 버스 가격은 단 돈 3천 원이었고, 나는 호이안까지의 이동시간이 고작 40분 남짓이라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버스 컨디션에 불과 몇 분 전까지 버스를 기다리며 느낀 증오와 분노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호이안의 첫인상은 좋았다. 따뜻한 햇살도 그렇고 지금까지 거쳐온 다른 도시에 비해 깨끗한 공기의 질도 그랬다. 게다가 숙소 주인의 친절까지 더해져 나는 순식간에 호이안을 베트남 최고의 도시로 꼽게 되었다.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은 들뜬 마음을 안고 바구니배를 타러 갔다. 반구형의 배를 타고 코코넛 나무와 맹그로브 숲을 유람하는 호이안의 대표 놀거리다. 나의 감정은 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요동쳤다. 뱃삯을 요구하는 사람이 내가 조사한 금액의 무려 4배가 넘는 금액을 부른 것이다. 물론 나는 넘어가지 않았고 결국 조사한 금액 수준에서 정리가 되었지만 호이안도 별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배를 타는 내내 이런저런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데 그만 질려 버렸다. 배가 반환점을 돌기 전에 빨리 내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호이안에서의 하루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바구니배에서 내릴 때 즈음 지갑을 분실한 것을 알았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지갑은 모자나 이어폰처럼 지금까지 분실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안에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등 중요한 것들이 들어있었고 그 말인즉슨 여행 진행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만일을 대비해 준비한 무기들이 있지만 이제 고작 2주가량 지나지 않았는가. 비상 물품들을 꺼내기엔 일러도 너무 일렀다. 내가 허둥지둥 몸을 뒤지고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하자 뱃사공 어르신부터 뭐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는 우리와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적극 적으로 나서줬고 배가 항구에 닿아 내리고 난 후로는 항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지갑 분실을 알렸다.


이 시점에 나는 다시 호이안이 좋아졌다. 바구니배 정류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내 일처럼 나서줬다. 그들은 CCTV를 돌려 혹시 떨어진 곳이 있는지 확인해 줬다. 내가 탑승했던 택시 기사를 수소문해 주었으며 그와 직접 전화 연결하여 그 안에 내 지갑이 있는지 까지 확인해 주었다. 나에게 4배가량의 뱃삯을 요구했던 여자분까지 이 과정에 동참해 주었고 그들에게 품었던 의심과 짜증은 사르르 녹아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내 지갑은 택시 안에 떨어져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곳 까지는 대기하고 있던 택시 아저씨가 데려다주셨다. 가는 내내 내가 너의 지갑을 찾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까지 시켜주셨다. 물론 정상가 보다 훨씬 높은 택시비를 받았지만 그것까지 분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카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 보다 훨씬 성숙한 대처를 보여준 아들을 칭찬하고(그가 아니었으면 지갑은 못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번역 앱을 돌려 현지인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지갑 찾기를 시도했다. 한숨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일관하던 나와는 달랐다.)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나는 호이안 사람들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까. 바가지를, 그것도 대단한 바가지를 씌우려던 그들의 모습이 진짜일까, 아니면 나의 불행에 자신들의 일처럼 나서준 모습이 진짜일까. 아들은 얘기했다. 그래도 도움을 주던 모습이 진짜 아니겠느냐고. 오늘은 아들이 더 어른스러웠으니 아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첫인상 그대로 호이안을 그냥 좋아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