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1(D+26)_태국/방콕
여러 사람이 걱정하던 캄보디아 일정이 끝났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캄보디아는 평온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웃도는 기온이 나와 아들을 지치게 했지만 좋은 여행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태국과의 마찰로 육로 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국경은 컨테이너로 완전히 막혀있단다. 막혀있지 않았어도 불안한 마음에 하늘 길을 택했겠지만 현재 상황을 들으니 야간 버스는 고민 없이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밤 9시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게 되었다.
문제는 남는 시간이었다. 씨엠립에서 방콕까지 비행기로 기껏해야 1시간 남짓이다. 거의 뜨면 착륙하는 수준인데 밤 9시 출발이니까 태국 도착하면 10시다. 우리는 도착 당일 객실을 잡지 않았고 잘 곳이 필요했다. 물론 급한 대로 공항 근처 호텔을 구할 수도 있지만 장기여행이라는 것이 자꾸 돈, 돈 거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어린 아들이 있으니 최대한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난감하다. 불과 몇 시간인데 몇 만 원을 쓴다는 것이 본전 생각을 하게 한다. 다행히 아들도 공항 체류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고 나는 잘 됐다 싶어 여행 시작 이후 처음으로 한뎃잠을 자기로 했다.
굳이 사전적으로 '한뎃잠'을 따지자면 공항은 지붕이 있는 곳이니 맞는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의미를 넓혀 몸 뉘일 곳이 마땅치 않은 곳이라 하면 적절한 표현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을까 싶어 맥도널드를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는 일단 눈치도 보이는 데다가 눕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공항 의자 서너 개에 몸을 나눠 뉘이고 곤한 잠을 자길래 저거다 싶었다. 혹시나 우리가 점찍은 자리에 누구라도 앉을까 봐 부랴부랴 맥도널드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그때 시각이 새벽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숙소로 가는 첫 버스는 새벽 6시에 출발한다 했다. 나는 경량 패딩을 꺼내 입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의자가 끊어지는 부분에 허리가 걸려 편치 않았다. 또 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니 폭이 좁아 돌아 눕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벤치가 최고의 객실이었다. 조금 뒤척였지만 잠이 드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아들이 나를 깨웠다. 5시 15분이었다. '조금 더 자게 놔두지'라는 투정은 금세 마음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들은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이유가 혹여 핸드폰 게임 때문일지라도 아들에게 미안했다. 아빠 따라 나와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버스는 정북에서 정남으로 달렸다. 오른쪽 창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고 왼쪽 창에는 먼동이 트고 있었다. 이 보기 드문 상황 속에서도 아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깨를 대 주었다. 버스가 조금 천천히 가길 바랐지만 기대와는 달리 도착지는 서둘러 다가왔다.
7시에 도착한 숙소에서 얼리체크인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9시까지는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9시에 돌아왔더니 별다른 추가 비용 없이 체크인을 해줬다. 지금 나는 지난밤 쓰지 못한 나의 숙제를 하고 있고 아이는 내 뒤에서 잠이 들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조금 놓치더라도 서너 시간은 재울 생각이다. 까짓 사원 몇 개 못 보면 어떤가. 아들이 잠을 못 잤는데. 아빠 된 마음이 그렇다. 긴 여정이니 앞으로도 몇 차례 더 한뎃잠이 있을 것이다. 나의 여행 파트너가 지치지 않게 하는 것도 나의 몫이리라. 아들 덕분에 나도 좀 더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