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푸욘 사원의 원숭이 선생

20260131(D+25)_캄보디아/씨엠립

by 박대희

아들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 잔기침이 계속되었지만 여행을 함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 일정도 오전 중에 끝날 예정이라 잔병을 털어내는데 크게 무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앙코르와트의 일출로 하루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렸지만 이른 새벽의 앙코르와트는 명불허전이었다. 빨간 태양과 함께 연못에 비친 사원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수많은 카메라가 앙코르와트를 향하고 있는 모습은 국경을 넘는 월드스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붉은 해가 하얗게 변하면서 높이 떠오르자 다국적 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여정을 위해 흩어졌다.


우리의 다음 여정은 앙코르톰이었다. 크메르 제국의 옛 수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나 부여, 공주 정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앙코르톰은 꽤 넓어서 모두 걸어 다니면서 보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중요한 볼거리가 한데 뭉쳐 있어 요령껏 계획을 잡으면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원숭이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태양이 아직 완전히 떠오르기 전, 햇살이 나무 사이로 기분 좋게 스며들던 이른 아침이었다. 높이가 34m에 달해 앙코르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바푸욘 사원에 들렀을 때다. 이 사원은 크게 3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오르는 건 앞만 보고 하면 되지만 되돌아 내려오는 길은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단을 어렵사리 내려오고 있는데 뭘 그리 꾸물대냐는 듯 원숭이 두 마리가 우리를 향해 뛰어올라 오고 있었다. 갑자기 달려들까 겁도 났지만 또 언제 야생의 원숭이를 구경하겠는가 싶어 나와 아들은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던 녀석이 수컷이었는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서 뛰어온 녀석과의 짝짓기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은밀한 행위를 지켜보기 위함이 아니었고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원숭이가 신기했던 게 어디 우리뿐이랴. 몇 안 되는 관광객 모두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고 나와 같은 난감함에 당황할 뿐이었다. 나는 옛 개그 프로그램의 고리타분한 아버지처럼 헛기침 비슷한 것을 내뱉고 고개를 돌리다 유럽의 청년과 눈이 마주쳐 멋쩍게 웃었다. 다행히 아래서 올라오던 여성들의 시선은 회피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눈치 보지 않고 신난 건 아들뿐이었는데 언제부터 찍은 것인지 짝짓기 모습이 그대로 담긴 영상을 내게 보여주며 다시 한번 낄낄거렸다.


뜻하지 않게 원숭이 선생의 힘을 빌어 성교육을 마치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성교육은 가정교육의 분야가 아니었다. 가족이 모여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조금 뜨거운 장면만 나와도 서로 눈치 보기 바빴던 기억이다. 내가 부모님께 성교육 비슷하게 들은 건 이미 커버릴 대로 커버린 대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겨울이었는데 이른 새벽 아버지와 산에 오르다 아무도 걷지 않은 소복이 쌓인 눈을 밟게 됐다. 아버지는 누구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을 걸으니 좋지 않냐며 누군가에게 처음은 이렇게 기분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남자고 여자고 마찬가지라며. 이 감성적이면서 알듯 모를듯한 한마디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성교육이었다.


그때 그 시절, 성교육을 '알잘딱깔센'으로 배우던 나는 아빠가 됐다. 세상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 첫 경험을 한다는 통계 수치가 내 예상을 어마어마하게 웃도는 조사 결과도 수차례 봤다. 이런 시절에 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가정에서의 적극적인 성교육이 권장되는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교육을 해야 되는 부모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들은 이미 원숭이의 행위가 무엇인지 알고 웃고 있는데 나는 내가 자라던 그 시절의 아버지들처럼 아무 말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사춘기를 앞둔 아들에게 내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렇게 단둘이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많지 않으리란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는 지금이고 나는 우리 시절 혜성처럼 등장했던 구성애 선생님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