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

20260130(D+24)_캄보디아/씨엠립

by 박대희

씨엠립행 야간버스가 말썽이었던 것 같다. 그날 밤은 나도 몇 차례 한기에 눈을 떴다. 혹시나 아들을 봤는데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것이 일상인 아들이 이불을 꼭 말아 쥐고 자고 있었다. 내 이불까지 같이 덮어줬지만 감기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들의 상태를 나도, 또 그도 어제는 알지 못했다. 앙코르와트에 도착했다는 흥분이 육체를 지배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어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야 몸의 이상을 눈치챈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 날 일정은 오후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약을 먹이고 잠을 재웠지만 하루 만에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오늘 일정은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혼자 소화하기로 했다. 아이가 너무 아파 돌봐줘야 할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에 남았겠지만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미열과 잔기침이 계속되었는데 혼자 있어도 무방해 보였다. 단기 여행이었다면 조금 무리를 해서 데리고 나갔겠으나 이번 우리의 여행은 대단히 긴 여정이고 아직 10%도 소화하지 못했다. 괜히 지금 무리를 시켜 여러 날 고생하는 것보다 작은 병일 때 털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판단했다. 아들에게는 핸드폰 쥐고 있지 말고 잠이나 푹 자라 했지만 아마도 그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것이다. 붙어있지 않는 한 제재할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문밖을 나섰다.


혼자 하는 여행이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앞선 많은 여행길에 난 혼자였던 적이 더 많았고 당연히 그게 편했다. 오늘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들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 수 있었고 비위를 맞춰가며 이것저것 사 먹일 필요도 없었다. 아들 챙기느라 늘 그쪽에 가 있던 눈을 들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내가 여행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여행이 5시가 넘어가고 차츰 해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 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지난 20여 일간 그는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든든한 파트너였나 보다. 꼬맹이의 빈자리를 느낀다는 건 내게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스라스랑이었다. 왕실의 목욕탕으로 쓰인 저수지라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씨엠립의 아름다운 일몰 장소로 유명하다. 어제 들렀던 프놈바켕이 산 위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일몰 명소라면 스라스랑은 저수지 뒤로 지는 해를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하나 둘 빈자리를 채웠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옆에서 조잘대던 아들이 없었다는 정도랄까. 아들이 옆에 없어 편하기도, 허전하기도 한 하루였지만 오늘의 노을이 어제처럼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했다.


혼자 여행하며 느낀 아들에 대한 사람을 담뿍 앉고 돌아왔지만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내가 나가면서 빨리 자라 했건만 추측건대 핸드폰만 쥐고 있다 내가 돌아오기 얼마 전에 잠든 듯 보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어봐도 우리 방에서는 인기척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로비로 내려가 직원에게 문을 열어달라 부탁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말에도 '조금만 있다가'를 연신 내뱉었다. 마음속에 담았던 사랑 따위는 스라스랑 뒤로 져버린 태양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다시 현실이다. 아들이 어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원하는 강도로 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