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8(D+61)_인도/바라나시
이곳 바라나시에는 한국 사람에게 유명한 두 명의 인도 사람이 있다. 철수와 선재 아저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한식당뿐만 아니라 너무도 능숙한 한국말로 보트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어제저녁에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철수 카페에 들러 식사를 했고 방문한 김에 일출 보트투어까지 신청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5시 10분에 철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철수 카페까지 가는 길이었다. 철수 카페는 유명세와는 달리 좁다란 골목길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제는 사람이 많이 다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새벽에 그 길을 가려니 쉽지 않았다. 바라나시의 골목은 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졌다. 게다가 새벽의 골목길은 조명도 밝지 않아 손에 쥔 온라인 지도가 없었다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지도가 있었음에도 몇 번 길을 잃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각종 동물들이었는데 그나마 순한 소는 옆으로 슬쩍 스쳐가면 되었지만 개들은 달랐다. 접어드는 골목마다 무수한 개들이, 어떤 녀석은 자고, 어떤 녀석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들 중 예민한 녀석들은 행인이 나타나자 늑대처럼 울부짖었고 나도 나지만 개 공포증이 있는 아들은 그 앞을 끝내 지나가지 못했다. 사실 나에게는 개나 소 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쓰레기를 물고 내달리는 쥐들이었다. 나는 쥐떼를 피해 빨리 골목길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개에 막힌 아들을 위해 다른 길을 찾느라 골목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결국 나는 나대로 또 다른 공포 속에 갇혀있어야 했다.
어렵사리 시작된 갠지스 강 보트 투어는 철수 아저씨의 친절한 설명 덕에 나쁘지 않았다. 비록 제철을 맞은 모기떼가 극성이었지만 바라나시에서 그 정도는 충분히 인내할 수 있었다. 아씨 가트의 신성한 새벽 푸자도 좋았고 따끈한 짜이 한 잔도 괜찮았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깨끗하지 않은 갠지스 강물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흥미로웠으며 그 강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도 비록 선명하지 않았지만 좋은 기운을 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화장터에서는 마침 화장이 진행되고 있어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장례 문화도 볼 수 있었다. 화장터가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트를 끝으로 우리의 보트투어도 끝났다. 새벽 일정으로 아침잠을 설친 아들과 나는 숙소에 들어와 휴식을 취한 후 오후 느지막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충분히 쉬었음에도 바라나시의 거리가 우리의 기운을 쏙 뽑아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릭샤 드라이버와 어렵사리 흥정을 마친 우리는 바라나시 대학 앞에 있는 카페까지 이동했고 나는 그제야 바라나시 여행을 돌아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바라나시에 다녀온 사람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많은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어떤 여행지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비록 그 여정이 힘겨워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 반을 머문 이곳 바라나시에서 나는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했다. 이곳은 그저 시끄러웠고 더러웠으며 염치가 없었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다른 곳에 삶의 터전을 두고 있는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나는 아무 죄 없이 끌려온 아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느라 눈치가 보였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입에 물리고 나서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깨달음은 모르겠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나를 이곳으로 다시 인도할지 확신이 없다. 내 생에 여행지로 다시 한번 바라나시를 선택할 일이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 이곳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조금 오래 머물러보고 싶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유가 평소 나의 수양 부족에 기인한다면 머무는 시간을 늘려 조금 더 노력해 보면 어떨까. 다만 그때는 누군가와 함께 오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나의 아내든, 친구든, 혹은 다시 아들이든 마찬가지다. 나야 이를 악물고 참는다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를 옆에 두고 이곳을 참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시는 못할 노릇이다. 그건 내가 참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오늘 수없이 많은 골목길을 걸었다. 그는 앞뒤로 오가는 사람과 오토바이, 수시로 등장하는 소와 개를 피하느라 차마 질펀하게 저질러놓은 소똥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등산화에 초록색 변을 잔뜩 묻힌 채 바라나시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무리 이 나라에서 신성한 소라지만 어디 변까지 신성하랴. 그래도 한국에서는 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 하니 다음 여정의 행운을 빌어본다. 이제 우리는 밟은 똥을 히말라야의 하얀 눈에 씻으러 네팔로 간다. 우려스럽게도 네팔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바라나시가 준 유일한 긍정적 효과 때문이리라. 앞으로 무슨 난관이 내 앞에 닥쳐도 이 보다 더할까. 이 것도 깨달음이라면 나 역시 작은 깨달음을 얻고 바라나시를 떠난다. 인도여, 2주 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