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1(D+64)_네팔/포카라
ABC(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했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해발고도 4,100m가 넘는 곳에서 고산병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였다. 대학시절 마추픽추를 향해 걷는 잉카 트레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 트레일 역시 4,300m 고개를 넘게 되는데 나는 그때 고산병으로 상당히 고생했었다. 만약 아들이 내 피를 물려받았다면 고산병이 그를 괴롭힐까 걱정되었다. 그래도 당시와 다른 점은 ABC는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는 점이다. 잉카트레일은 트레킹을 시작하고 단 이틀 만에 최고 높이에 이르지만 ABC는 5번째 날이 저물 무렵에야 정상에 선다. 고도에 적응할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산병 약까지 준비했다. 페루에서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코카잎만 죽어라 씹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산병은 의학적으로 어떤 체질의 사람이 강하고, 약한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높은 곳에 서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말인데 이 문제를 계속 걱정해 봐야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산병에 대한 건 그저 하늘에 맡겨보기로 했다.
다음 고민이 더 큰 문제였다. 과연 어린 아들이 6박 7일간의 히말라야 산행을 견뎌낼 체력이 되느냐였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많이 시켰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여러 산에 데리고 다니며 함께 연습을 했다. 한참 친구들과 놀고 싶은 나이에 아빠 쫓아 산에 가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괴로웠겠냐만은 그 방법 말고는 ABC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수많았던 산행의 끝, 그리고 ABC의 최종 리허설은 지리산 종주였다.
지리산 종주는 일반적으로 2박 3일 일정으로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화엄사부터 올라갔기 때문에 더 힘들었지만 요즘은 성삼재라는 곳까지 버스가 닿아 초반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산길로 40km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하고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고개를 넘는다. 국내에서는 가장 긴 단일 산행 코스로 알고 있다. 이 길을 아들이 버틸 수 있다면 ABC도 도전해 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들과 나는 지리산 종주를 1박 2일 만에 해냈다. 당초 2박 3일로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아들이 산에 오래 있기 싫다면 1박 2일로 끝내자 했고 본인이 장담한 대로 해낸 것이다. 아들을 10년 넘게 키우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었다.
아들은 종주를 하는 내내 오르내리는 다른 등산객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주치길 바랐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들의 칭찬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오기 전까지 여러 산을 다니면서 지나치는 어른들한테 많은 격려를 들었기에 난도가 높은 지리산은 그 강도 역시 함께 올라가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들이 만난 많은 등산객들은 열렬히 그를 칭찬했다. 아마도 그런 응원의 말들이 그를 더 힘나게 하지 않았을까. 그는 완전히 하산한 후에 본인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거냐며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답에 대해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날만큼은 아들이 한껏 신날 수 있도록 장단을 맞춰줬던 기억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ABC의 여정에는 그를 칭찬해 줄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있다면 옆에서 함께 걷는 아빠 정도가 전부다. 나는 칭찬에 관대한 성격은 아니다. 너무 잦은 칭찬이 꼭 필요할 때 해야 할 칭찬의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고래를 춤추게 하려면 꼭 춰야 할 때 추게 하고 싶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입이 닳도록 칭찬을 쏟아부을 생각이다. 칭찬의 힘이든, 아니면 평소 아들의 노력으로 준비된 체력 덕이든 ABC 트레킹의 성공적 완주는 그에게 또 다른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어제,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쉬었다. 틈나는 대로 트레킹에 지니고 가야 할 물품들을 챙겨봤을 뿐이다.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고마운 선물들까지 더해져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금 시간 자정이 조금 넘었다.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