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2(D+65)_네팔/ABC트레킹 Day1
몸도 마음도 단단히 준비한 아들과 나는 아침 9시 포카라를 떠났다. 세계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많은 짐 중 상당 부분을 숙소에 남겨뒀지만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위해 빌린 짐들이 더해져 결과적으로 짊어져야 할 무게의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밀 병기가 생겼으니, 이름하여 사르키. 6박 7일간 우리를 지켜줄 가이드 선생님이다. 내가 지던 짐은 그대로 내가 맡았고 아들 몫은 사르키에게 부탁했다. 덕분에 아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히말라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ABC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우리가 등산로 초입까지 타고 갈 차는 과연 굴러갈까 싶을 정도로 오래된 지프차였다. 그럼에도 숙소에서 입산 허가 체크 포인트 까지는 무난히 이동했다. 도로 곳곳에 패인 곳이 있어 차가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체크 포인트 이후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낡을 대로 낡은 우리 차가 얼마나 위대한 힘을 지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돌려 어제 오전 우리의 트레킹을 총괄할 여행사와의 미팅 때 일이다. 항목별로 계약된 금액을 체크하던 나는 한 지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숙소에서 트레킹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그리고 트레킹이 끝난 후 숙소까지 이동하는 교통비가 네팔 물가를 고려했을 때 너무 비쌌던 것이다. 왕복 6시간을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은 자그마치 16만 원. 참고로 네팔 국경에서 포카라까지 편도 12시간을 이동한 버스는 인당 25천 원이었다. 이 엄청난 불균형이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을 했지만 여행사 대표는 그저 희미한 웃음만 흘렸다. 정해진 금액을 계속 따져 묻기도 뭐 해 나도 그쯤 해서 그만 캐묻기로 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의아함은 지울 수 없었다.
여행사 대표가 흘리던 웃음의 의미는 체크포인트를 지나자마자 풀리기 시작했다. 입산 허가를 받은 우리의 '슈퍼카'는 다짜고짜 오프로드에 접어들었다. 그저 모래밭에 자갈 몇 개 굴러다니는 오프로드가 아니었다. 우리가 지나는 길은 엊그제 산사태가 있었다 해도 믿을 만큼 험난했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움푹 파인 곳들은 물이 고여 작은 연못처럼 보였다. 그런 길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이어졌고 차의 좌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쫓아왔다. 내 엉덩이는 차의 흔들림에 맞춰 멈추지 않고 춤을 췄으며 단지 차에 앉아있을 뿐임에도 온몸에 땀이 스며 나왔다. 차라리 내려서 걷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이 길을 20km를 달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등산을 시작하는 지점에 내릴 수 있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것이 잔뜩 끼어 경치를 감상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저 두 발로 땅을 딛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점심을 먹고 고통받던 엉덩이를 조금 쉬게 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그리고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간사한 나의 마음은 또다시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가이드 사르키는 분명히 말했었다. 오늘 코스는 어렵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산신령처럼 걷기 시작했고 아들은 그 뒤에서 산신령의 신도라도 된 듯 잘도 따라 걸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들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흩뿌리기 시작한 비까지 더해져 차라리 아까 그 차라도 타게 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트레킹 곳곳에 보이던 당나귀 서비스에 얼마나 눈길이 가던지, 자존심이고 뭐고 귀여운 녀석의 등에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행히 아들과 나는 무탈하게 첫 번째 목적지인 해발고도 3,000m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 올라선 높이지만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무거운 노트북은 가져오지 못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난로 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자세가 조금 불편하지만 히말라야에서 난로 불을 쬐며 글을 쓰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다시없을 추억이다. 아들은 여전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이곳에 와이파이가 연결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고단한 여정 뒤에 게임할 기운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실컷 게임해도 좋으니 돌아가는 날까지 지금의 컨디션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들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