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4(D+67)_네팔/ABC트레킹 Day3
어제 타다파니를 지날 때의 일이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가 묵을 출레까지는 1시간 남짓 거리가 남아있어서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가방에 커버를 씌우고 방수 재킷을 입은 후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하얀 생명체가 쓰윽 종아리를 스치고 지나가 깜짝 놀랐다. 그는 나를 지나쳐 앞서 걷고 있는 아들과 가이드에게까지 갔고 그때부터 우리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길동무가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대부분의 하얀 개가 그리 불리듯 그녀를 백구라 칭하기로 했다.
우리 셋과 함께 백구가 숙소 앞마당에 들어서자 백구의 두 배 만한 크기의 시커먼 개 세 마리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 들어왔던 문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 인연의 마지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신묘한 기술을 사용했는지 그들을 피해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마침 열쇠를 받아 들어가려던 우리 방문 앞에 스핑크스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녀는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 가끔 밖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내다보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백구는 돌부처처럼 문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백구에 대한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갔으려니 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어디선가 나타나 다시 우리를 따랐고 식사하는 내내 식탁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녀에게 빵과 감자를 내밀었지만 코만 벌름거릴 뿐 입에 대지 않았다. 더 이상 줄 것이 없던 나는 그저 아쉬움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백구는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왔는데 내리막길 1시간 정도를 함께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운명의 흔들 다리가 나타난 것은 내리막길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길을 앞둔 시점이었다. 나나 아들 모두 흔들 다리 같은 류를 두려워하지만 우리보다 더 무서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백구였다.
백구는 몇 번이나 다리 초입까지 진입했으나 결국은 건너지 못하고 돌아섰다. 우리 셋 모두 다리를 건넌 뒤에도 그녀는 반대편 다리 시작점에 앉아 우리를 지켜봤다. 그리고 우리가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계곡 반대편에서 함께 내려왔던 내리막길을 거슬러 오르며 우리와 눈을 맞추려 시도했다. 그녀는 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을 이어갔고 우리도 백구도 서로 바라볼 수 없게 된 후에야 그 소리도 잦아들었다. 함께 지낸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존재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백구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그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개를 무서워하는 아들 역시 "잘 돌아갔겠지?" 라며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쉬지 않고 던졌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는, 그래서 백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우리의 가이드만이 별 것 아니라는 듯 터벅터벅 무심히 앞서 나갔다.
아들이 떠나보낸 백구에 대한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듯하여 한마디 했다.
"저 친구도, 저 친구의 삶을 살아야지. 우리가 계속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너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거야. 지금이야 함께 여행도 하고 돌아가서도 한참은 같이 자고 같이 먹겠지만 결국 엄마, 아빠가 너를 떠나보내는 날이 오겠지."
아들은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대충 장난으로 넘겨보려 했으나 나는 남은 말들을 이어갔다.
"함께 있는 동안 네가 떠나서도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엄마, 아빠 몫이야. 그렇게 네가 잘 자리 잡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엄마, 아빠가 영원히 떠나게 되는 날이 올 텐데 그때 너나 엄마, 아빠 마음이 모두 편안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수는 없다. 부모들은 모두 어느 시점에 사랑하는 자식을 놓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이다. 어떤 방법이 아이를 잘 떠나보내는 것인지 증명된 바 없지만 그들의 미래에 대한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음은 분명하다. 나는 이 여행으로 아이를 떠나보낼 미래의 어느 날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이 끝나고 아이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여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면 그의 미래도 굳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여행에서 얻는 수많은 경험들이 험난한 세상에 아들이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설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