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짱 도루묵

20260321(D+74)_네팔/카트만두

by 박대희

이른 아침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사장님 부부는 일찍부터 나와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눈길이 갔지만 우리는 또 다음 일정이 있으니 그곳에 머물 수만은 없었다. 택시는 얼마 달리지 않아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카트만두행 버스는 8시 출발을 위해 대기 중이었고 늦지 않게 탑승할 수 있었다. 이번 버스는 2주 전 소나울리에서 포카라까지 12시간을 달렸던 버스보다 좌석 간 간격이 넓어 무릎을 편안히 넣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동 시간도 그때보다 짧으니 큰 무리 없겠거니 생각했다.


시간이 되어 버스는 출발했다. 비단길 달리듯 이동해 주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출렁거렸다. 포카라로 향하던 도로보다 사정이 안 좋은 것도 아닌 듯한데 체감상 그때 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애써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잠이 올리 없었다. 결국 나는 몇 번씩 뒤집히는 속을 안정시키느라 확인되지 않은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야 했다. 머리 곳곳을 꾹꾹 눌러댔으며 손가락 마디마디를 당기며 주물렀다. 다행히도 버스는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기 전에 가까스로 휴게소에 들렀고 찬 바람을 쐬는 것으로 다시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험난한 버스 여행길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처음에 예상했던 도착 시간보다 자그마치 2시간이나 당겨졌다는 점이었다. 오후 6시 도착을 생각했던 버스는 4시가 조금 못되어 우리를 카트만두에 내려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가 내린 곳은 지붕 하나 없는 길가였는데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미 멀미로 정신이 없던 나는 흥정이고 뭐고 가까이 있는 택시에 올라타 예약해 놓은 호텔 위치를 말씀드렸다. 호텔에 짐을 풀고 침대에 몸을 뉘인 다음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해 질 녘까지 누워 있었지만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이지 못한 아들 생각에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다. 저녁은 평소처럼 먹지 못했지만 오며 가며 동네 구경을 하니 그래도 조금씩 상태가 좋아지는 듯했다.


ABC에서 돌아온 후, 컨디션 회복을 위해 포카라에서 보낸 사흘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래도 며칠은 휴식의 덕을 보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역시 길게 하는 여행은 만만치 않다. 아들 역시 ABC에서 달고 온 감기로 콧물과 기침이 멎지 않는다. 이럴 때는 조금 따뜻한 곳에 있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해발고도 천 미터가 넘는 카트만두다. 무엇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음에도 다음 일정은 줄 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머무르는 것도 이틀, 사흘 후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도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 구간에 진입한다.


ABC트레킹이라는 큰 산을 넘은 것에서 오는 허탈감인지, 여행 3개월 차에 접어들며 느끼는 권태감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저 체력 저하인지 알 수 없지만 여행 리듬이 좋지 못하다. 걱정 없이 며칠 쉰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80일 가까이 긴장 속에 살다가 그 긴장감을 잠시 풀어놓았더니 그간 느끼지 못했던 부정적 요소들이 일시에 몰려오는 느낌이다. 이제 전체 일정의 20% 정도 소화했다. 앞으로도 몇 번 더 힘든 구간을 겪겠지만 그걸 이겨내는 것도 나와 아들 몫일 테다. 집은 멀어졌고 매일이 낯선 이 길에서 결국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들과 나 둘 뿐이다. 다시 좋은 리듬으로 우리를 밀어 넣을 수 있는 지혜를 모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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