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과 순종 사이에서

Chapter1. 죽음에 대하여

by StoneTiger

Chapter1. 죽음에 대하여

회사 동료의 부친상에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별세에 충격을 받은 동료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무거워졌다. 코로나19로 인해 평소보다 더 차갑고 적막한 장례식장 안에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절망감과 상실감은 더욱 선명히 다가왔다.

문득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의 인생을 스쳐간 순간들을 돌아보았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스친 죽음의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으셨던 친할아버지. 가족들에게 늘 미안함과 고통을 안겨주었던 할아버지는 결국 술로 인해 다치시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셨다.

그때 나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상실감과 가족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죽음이라는 것이 삶을 순식간에 휩쓸고 가는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 나는 삶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연약함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였다. 청량리 시장 가판대에서 야채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나는 가끔 할머니의 가판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받아 쥐던 그 따뜻한 손길과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할머니는 어느 날 시장 화장실에서 넘어지신 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죽음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할머니가 없는 시장은 예전 같지 않았고, 할머니가 가시고 나서야 그 빈자리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내가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팀장님이었다. 처음엔 무척이나 엄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따뜻한 정이 많은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갔던 이집트 출장에서의 나일강 앞 식당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나눈 인생의 고민과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인생의 유한함과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나는 그동안 충분히 감사와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마음이 더욱 아팠다.


네 번째 죽음은 나의 영적인 멘토였던 다니엘 목사님이었다. 이집트에서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난 그는,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법과 신앙인의 자세를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다. 목사님과의 대화는 늘 깊고 의미 있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그 분의 죽음 앞에서 나는 인간의 마지막이 이토록 허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슬픔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마지막을 보며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섯 번째 죽음은 바로 내가 될 뻔했던 사건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결핍감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컸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도 늘 함께했다. 한편으로는 늘 위험과 도전을 추구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로 근무할 때, 암과 백혈병으로 고통받던 동료를 보며 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더욱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길 원했다. 그 결과 이집트에서 봉사단원으로 2년을 보내게 되었고, 다시 현재의 직장에 들어와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같은 위험한 지역을 자처하여 출장과 근무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역설적인 선택들 속에서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 지나친 술자리를 반복하게 되었고, 결국 그 무모함이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한국에 귀국한 직후의 술자리에서 사고를 당했고, 외상성 뇌출혈로 인해 16일간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내가 본 것은 끝없는 어둠과도 같은 무의식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 암흑의 공간을 지나며 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직 살아갈 이유와 사명을 남겨두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마주한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내가 겪은 이 경험을 통해, 죽음 앞에서도 삶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그 경험을 글로 남기며, 가족들의 헌신과 사랑,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기록하여,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삶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며, 가족들과의 시간 하나하나가 너무나 귀하고 값지게 다가온다. 죽음이라는 어둠이 삶의 밝은 빛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더 이상 불필요한 인정과 불안을 좇지 않고,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과의 진실된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이제 나는 내가 겪은 이 죽음과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감사를 많은 이들과 나누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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