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과 순종 사이에서

Chapter 2. 역설

by StoneTiger

역설(Paradox)이란 사전적으로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나에게 준 울림은 단순한 논리의 반전 그 이상이다.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실패와 구원 사이의 복잡한 교차점에서 나는 역설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무게를 느꼈다. 그 무게는 이론이 아니라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체험은 흔히 말하는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피와 눈물, 침묵과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내 영혼에 새겨졌다.


정재영의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인용된, 프린스턴 대학생 BJ 밀러의 이야기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1990년, 19살의 밀러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새벽 3시경 멈춰 있던 열차 위로 올라갔다. 장난이었을지도, 혹은 충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고압 전류가 그의 시계를 타고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는 심각한 화상을 입고 왼팔과 양쪽 발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대를 진학해 말기 환자들의 통증을 돌보는 완화의학 전문의가 되었다. 그의 삶은 역설의 연속이었다. 가장 처절한 고통이 오히려 타인을 위한 깊은 공감의 씨앗이 되었고, 상실은 새로운 사명의 시작이었다.


나는 밀러처럼 신체적 절단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며 정신적으로 유사한 역설의 고통을 체험했다. 사고 이전까지 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접할 때 느끼는 슬픔이나 아쉬움이 전부였다. 하지만 사고 이후, 그저 뉴스 속 이야기였던 '죽음'이 내 이야기로 바뀌었고, 내 가족의 고통으로 확장되었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내 영혼은 무너졌고, 동시에 새로운 삶의 감각을 얻었다.


밀러의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가 단순히 극복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의 고통은 단순히 불행을 딛고 성공한 미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회복에는 오랜 시간의 통곡, 절망 속의 침묵,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존재의 의문과 씨름한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역설은 고통이 곧 은혜가 된다는 진리를 체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쓰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설이라는 단어가 단지 머릿속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싶다. 눈물이 있었기에 기쁨이 있고, 실패가 있었기에 배움이 있으며, 상실이 있었기에 새로운 만남이 가능하다는 그 진리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말들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내 삶 속에서 피로 새겨진 고백임을, 독자들이 느껴주었으면 한다.


나는 내 안의 역설적 성향을 이미 앞 장에서 언급한 바 있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공공기관에 재직하며 교사인 아내와 가정을 꾸려 겉보기엔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안정에 대한 반동으로 봉사단원으로 이집트에 2년간 나가고, 수많은 선택지 중 일부러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위험한 근무지를 선택하는 내면의 모순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정 속에 있는 나와, 불확실성과 낯섦을 향해 뛰어드는 나. 이 두 자아는 내 안에서 늘 충돌했고, 때로는 깊은 피로와 갈등을 낳았다.

학문적 선택에서도 그 역설은 계속되었다. 수학에 약했음에도 공대 전자공학과를 선택했고, 이후엔 경영학 석사를 통해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했다. 그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융합형 인재라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에겐 늘 자격지심과 성취 압박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역설은 이처럼 겉으론 가능성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복잡한 고통을 품고 있었다.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듯한 기분, 어딘가에 꼭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감각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 피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내가 의존하게 된 것은 알코올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친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같은 길을 택했다. 그것은 단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도피였을 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알코올은 잠시 마음을 마비시켰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더 깊은 나락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외로움 속에서 그 쓴맛을 위안처럼 받아들였고, 어느 순간 그것 없이는 견디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나의 삶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상반된 것들 사이를 오갔다. 안정과 모험, 믿음과 의심, 순종과 반항. 하지만 나는 이 역설의 길에서 결국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는 이 모든 불균형과 충돌, 모순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그것은 내 힘이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다. 오직 은혜였다. 그 은혜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으로, 때론 깊은 눈물 속의 따스한 손길로 다가왔다.


이제 나는 그 역설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고통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며,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기회임을 믿는다. 역설은 불편하지만, 역설을 직면할 때 진짜 자아가 드러나고,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이 글이 그런 회복의 시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와 같은 갈등과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대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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