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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제니 Apr 13. 2021

70대 엄마 타이르는 30대 딸

소득이 없다고 그냥 놀고만 있는 게 아니란다

난 주말은 최대한 나를 위해 놀려고 노력한다. 사실 수입이 많지 않은 가난한 N 잡러에겐 노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주말에 좋아하는 책, 끄적거릴 수 있는 노트 하나 들고 카페를 향하는 길이 나에겐 달콤한 주말의 사치다.


수요일부터 토요일에 날 위한 사치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했다. 일단 블로그에 글도 하나 쓰고 싶고, 내 잡다한 생각의 우주에서 유영하며 떠다니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다. 서울에서 이런 걸 즐기기에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카페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는 카페로 향할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금요일 밤 10시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는 배추가 빨간 고무 대야에 얌전히 절여지고 있고, 그 옆에는 우람한 무가 지키고 서있다. 맙소사! 손 큰 나의 어머니 최여사가 또 김치를 할 작정이다.

최여사는 김장김치 외에도 수시로 김치를 담그신다. 물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알타리 김치, 배추김치, 겉절이 등등. 최여사는 맨날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왜 이렇게 김치 냉장고가 놀고 있는 꼴을 못 보는 걸까?

난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누워있는 배추를 보자마자 다음 날 최여사가 나에게 같이 김치 담그자고 할 것을 분명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들기 전 다짐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토요일은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거야!


드디어 토요일이 왔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나는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했다. 산책하는 강아지 주변을 호기심 반, 무서움 반으로 서성이는 어린아이처럼 최여사는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제니야, 배추 속 넣는 것 좀 도와줄래?”

“아니, 나 나갈 거야”


강아지에게 관심 갖던 어린아이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개에 대해 온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장수 아저씨가 등장했다.


“어디 갈 건데!”


‘와......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 것이다’를 한번 더 깨달으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페 갈 거야”


물론 70대 중반인 최여사 혼자 김치 담그게 하고 나가는 게 맘이 편하진 않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울타리를 세워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최여사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돕느라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로가 쌓여 한 주가 힘들어 지거나,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샌가 나의 포지션이 매우 백수스러워졌다. 집에 있어도 난 나름대로 작업을 하며 일을 하는데, 엄마 눈에는 그것이 일로 보이지 않으니 ‘뭐 대단한 거 한다고 도와주지 않느냐’ 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여사는 계속 구시렁구시렁 투덜거린다. 이럴 땐 진짜 딱 투정 부리는 미취학 아동 같단 생각이 든다.


“엄마, 엄마는 왜 내 일정은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배추 담그고, 내가 도와주길 바라? 나도 내 일정이 있을 수 있잖아”

맞는 말에는 또 대꾸 못하는 철부지 최여사. 이럴 때 보면 난 애도 없지만 애가 생긴다면 꽤나 잘 키울 자신이 생긴다.


‘엄마야, 딸이 소득이 많지 않지만 그냥 놀고만 있는 게 아니란다. 딸은 미래를 위해 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딸 나름의 성을 짓고 있는 거란다. 그렇기 때문에 딸의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단다.’


이렇게 나는 엄마와 딸이 바뀌었다 생각하며 엄마와 싸우지 않고, 내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기에 마음처럼 안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점점 전쟁의 횟수는 줄어들었다.


최여사,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 내가 잘 키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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