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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제니 May 12. 2021

늦둥이 영재 탄생

1946년에 태어난 나의 어머니 최여사는 문맹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문맹인 최여사의 눈이 되어 주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는 아이가 엄마의 보호를 받기보단 아이가 엄마를 보호해주고, 도와줘야 하는 관계로 자리 잡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늦둥이임에도 불구하고 조숙한 애늙은이로 자랐다. 글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보다 열 한살이나 많은 아버지. 그렇게 노부모의 손에 자라다 보니 또래 친구들이 유치원에 갈 때 나는 늘 집에서 혼자 놀았다. 내 위로 네 명의 언니와 오빠가 있지만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나랑 놀아주거나 교육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한 가지 신기한 게 있다면 아무도 나에게 한글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시절에 엄마 손을 잡고 서점에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동네의 작은 책방에 들어서면 풍기는 책 냄새가 정말 좋았다. 서점에서 가장 처음으로 관심 갖던 책은 챔프라는 두꺼운 만화책이었는데, 글을 몰랐어도 그림을 보면서 그림 옆에 말풍선에 쓰인 글을 혼자 상상하며 유추하는 것을 즐겼던 거 같다.



나는 스스로를 나름 창의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이런 건 어린 시절 그런 과정이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만화책 속 그림을 보면서 말풍선의 글을 상상하던 어린아이는 어느샌가 받침이 없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받침 없이 글을 읽다가 실제 말하는 발음과 글자를 연결하게 되었고, 그렇게 글을 깨우쳤다.



이 정도면 영재에 천재 수준 아닌가?!



그렇게 똘똘했던 어린아이가 왜 커가면서 더 똑똑하게 성장하지 못했는지는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 잔뜩 으쓱하며 자랑하던 어깨가 축 늘어지니까. 그래도 최여사는 항상 남들 앞에서도 내가 똑똑하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쟤가 대가리가 커서 머리 하난 똑똑해!”


칭찬과 디스를 한 번에 잘도 하신다. 최여사도 글만 모를 뿐 이런 거 보면 참 영리하다. 최여사, 똑똑하다는 말만 들은 걸로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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