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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제니 Jun 22. 2021

서운함 비워내기. "나는 상처였어"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는 겸손이 미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반복되는 실패와 나아지지 않는 형편 때문이었을까? 

나의 어머니 최여사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면 응원보다는 부정적인 대답이 먼저였다. 그런 최여사의 말은 알게 모르게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에 조금씩 흠집을 내고 있었다.


"그게 되겠어?"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겠니?"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그건 옛날부터 배고픈 직업이라고 했어"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대답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나 역시 '그렇지? 그건 어렵겠지?' 라며 시작 전에 포기해버리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우리 집안 또는 나의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헛된 꿈이라고 묻어둔 채 시간이 흘러 나는 30대가 되었다.


그렇게 헛된 꿈은 접고, 현실에 충실하게 살았다면 나의 30대는 조금 나아질 줄 알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온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길은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 앉은 시골길에서 코 앞만 내다볼 수 있는 손전등 하나만 들고 걷는 길과 같다. 어디를 향해 걷는지 저 멀리는 볼 수 조차 없고, 바로 앞만 보며 걸을 수 있는 길.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한 달을 벌어서 한 달을 생활하고, '소소한 행복'이라는 포장지에 감춰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만족을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꿈이 많던 어린 시절에 내가 상상했던 30대는 어디 가고,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자 내가 무언가 시도하려 할 때마다 의욕을 꺾던 최여사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방금 들은 말인 것처럼 나는 서러움과 화가 뒤섞인 슬픔이 울컥 올라왔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내 자존감을 짓밟았을까?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을까? 

내가 그렇게 못난 딸이라서 그랬을까? 등등 그 질문들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혼자만의 늪을 만들고 나를 바닥이 어딘지 조차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서서히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멈춰야만 했다.

나의 자존감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다독여주고, 보호해줘야만 했다.

그리고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들로 그 못난 물음들에 대답해주려 했다.


'엄마의 삶이 힘들었잖아. 엄마는 그 정도까지 밖에 생각을 할 수 없는 거였어.'

'엄마도 경험해본 게 없잖아. 전문가가 아니었던 엄마의 말에 상처 받을 필요 없어.'

'엄마는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몰랐을 거야.'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야.'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의 모든 말과 행동은 나를 위한 것들이야. 다만, 엄마가 잘 몰랐을 뿐이야'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해주고 나니 거친 파도처럼 일렁였던 마음이 차츰 차분히 가라앉았고, 오히려 그렇게 부정적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최여사가 가여워졌다. 최여사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문맹이기 때문에 본인이 경험하고, 본 것 위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최여사 역시 그런 고정적인 사고방식의 말들만 듣고 자라 왔으니 어쩜 최여사에겐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의 조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여사를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앞으로도 최여사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긍정적 기운이 샘솟던 어느 날, 나는 실없이 최여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두고 봐. 난 진짜 잘 될 거야. 언젠가는 빵! 하고 뜰 거야! 기다려 봐!" 

이건 내 나름의 자기 최면과 같이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최여사는 역시나 웃는 얼굴로 산통 깨는 말을 했다.

"어이구~ 똥 싸고 있네! 기다리다가 목 빠져 죽겠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큰소리는!"

스스로 나를 다독여주고, 최여사를 이해했던 과정이 도움이 된 것일까? 이번에 나는 예전과는 달리 화가 나지도 않았고, 크게 속상하지도 않았다. 


"엄마"

"왜?"

"엄마는 왜 항상 그렇게 말해? 말이라도 '그래, 너는 잘 될 거야.'라고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잖아. 남들이 다 믿어주지 않아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이 믿어주고, 응원해줘야지.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고,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나는 뭐든지 시작할 용기마저 잃어.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게 나한테 얼마나 상처인지 엄마는 몰랐지? 나한테는 상처야 엄마.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어디 나가서도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가 없어."


최여사는 내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최여사는 갈 길을 잃은 듯한 손으로 의미 없이 싱크대 주변을 닦으며 뒤돌아선 채 입을 뗐다. 


"엄마야 당연히 네가 잘되길 바라지~ 엄마가 가르친 게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해서 하는 말이었어. 엄마가 잘못했어."


아마 이런 나의 서운한 마음을 화내지 않고 제대로 전달한 게 36년 만에 처음이었던 것 같고, 최여사 역시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과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다독이고 위로해줬던 말들은 사실이었다.

최여사는 요즘 세대의 젊은 엄마들처럼 아이의 자존감을 어떻게 키워주는 것인지 몰랐고, 사실 자존감이라는 단어 조차 알지 못하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악의 없는 말에 상처 받고, 자신감을 잃은 채 주저하며 살았던 나의 어린 날이 가여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나의 서운함을 비워낸 것이 아까 말한 어둠으로 가득한 길에 가로등 하나를 밝힌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사람은 표현을 해야만 한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결코 알지 못한다.

자존감은 타인으로부터 채워질 수도 있지만, 그건 타인으로 인해 잃을 수도 있다.

그 누구로부터도 다치지 않는 자존감을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돌보고,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말하지 못한 상처, 서운함을 안고 살고 있다면 한번 진지하게 마음을 꺼내 보여줘 보면 어떨까?

"나는 그게 상처였어."라고. 상대방의 반응과 관계없이 이렇게 응어리져 있는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꽤나 큰 치유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또 70대의 최여사를 새로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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